바둑메카 '충암사단'200단 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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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충암사단' 이 2백단 (段) 을 돌파했다. 또 충암연구회를 이끌어온 최규병8단은 9단으로 승단해 국내 18번째로 입신 (入神) 의 대열에 들었다.

지난 2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제75회 상반기 승단대회. 1백98단을 기록중인 충암학원 출신의 프로기사들이 이날 2백단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 됨에 따라 관계자들이 이 대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최규병8단이 승리해 9단이 되자 1백99단, 곧이어 김만수3단이 4단으로 승단하며 2백단이 됐다. 이정우2단도 3단으로 승단해 2백1단.

충암학원이 바둑의 명문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다. 당시 충암학원의 이홍식 이사장은 프로기사 김수영7단을 영입해 바둑부 지도를 맡겼고 유망주에겐 장학금을 주었다. 바둑 꿈나무들이 모여들었고 곧 하나 둘 프로기사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충암출신의 프로기사가 46명이나 된다. 9단도 무려 5명. 세계 최강 이창호9단과 세계 제일의 공격수 유창혁9단이 있고 랭킹 5, 6위를 달리는 양재호9단과 세계 최초의 바둑학교수 정수현9단, 그리고 이번에 승단한 최규병9단이 그들이다.

국내 프로기사는 총 1백54명이다. 이중 46명이니까 충암출신이 3분의1을 넘는다. 여성 프로도 현미진초단 등 3명이 있다. 그러나 충암의 진정한 힘은 수가 아니라 실력에 있다. 9단들 외에도 최고의 신예유망주인 이성재5단과 '세계4강' 김승준6단, 지난해 바둑문화상 신인상을 수상한 안조영5단과 이에 필적하는 김명완4단, 미완의 대기 최철한2단 등 젊은 강자들이 거의 다 충암출신이다.

이러다보니 프로지망생이라면 누구나 충암을 가고싶어 한다. 쟁쟁한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으니까 프로입단은 물론 프로에 들어간 뒤에도 유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웬만한 실력으로는 충암에 명함도 내기 어렵게 됐다.

충암출신 중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의 정수현교수처럼 독특한 인물도 많다.

프로기사로는 세계 유일의 정치학 박사인 문용직4단과 프로기사를 다수 배출한 강북 바둑도장의 대부 허장회8단이 있다. 조대현8단은 현 기사회장이고 또 바둑TV의 유능한 강사다.

일본에서는 기타니 (木谷) 도장 출신이 3백단을 돌파한 적이 있다. 조치훈9단을 비롯해 다케미야 마사키 (武宮正樹) 9단 등 이곳 출신의 유명기사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곳을 세운 기타니 미노루 (木谷實) 9단 이 사망하자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일본바둑은 이때부터 영재 배출의 통로를 잃고 점점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충암연구회에 이창호9단.유창혁9단 등 최고실력자들이 참여해 자신의 평소 연구를 모두 전수하는 바람에 어린 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무서운 10대 파워는 이창호 - 유창혁 두 쌍두마차에 의해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충암' 을 우려의 시선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머지않아 토너먼트 프로들은 거의 다 충암출신으로 교체될지 모른다. 그때는 충암의 의미도 반감된다. 도장이든 학교든 충암에 대항할만한 새로운 힘이 일어나야 경쟁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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