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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밖에서 본 '경제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7일 밤 (한국시간 8일 새벽)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호텔 연회장 - .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김종필 (金鍾泌) 총리 일행을 위해 환영만찬을 베풀고 있었다.

양국 총리의 건배 제의 후 가벼운 대화가 오가며 좌중의 분위기도 무르익어갔다.

이 때 네타냐후 총리의 목소리가 갑자기 은근해졌다.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들은 하나같이 이전보다 3~4배 경제발전을 이룬 일도 있다. " 만찬장에 오기 전 한.이스라엘 투자보장협정에 서명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자국에 유리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집요하게 요구했었다.

그 집요함이 만찬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협정 체결에 신중을 기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인 만큼 金총리는 "검토중" 이란 말로 발을 뺐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후에도 방산 (防産) 분야 협력을 제의하는 등 만찬외교로 '밥값' 을 뽑으려 무진 애를 썼다.

현지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네타냐후가 보인 집요함의 배경을 최근의 경제 제일주의에서 찾았다.

"경제성장률이 95년 7.1%에서 지난해 1.9%로 급락하는 등 이스라엘 경제가 침체국면을 맞았기 때문" 이라는 것. 비슷한 상황은 이집트에서도 벌어졌었다.

지난 4일 카말 간주리 이집트 총리가 金총리를 위해 베푼 환영만찬에는 무려 8명의 이집트 각료가 참석, 원전기술 이전.아무리야 방직공장에 대한 기술투자 등을 동시 다발로 요청해 우리측을 놀라게 했다.

한 수행원은 "金총리의 방문에 즈음해 경협 선물을 달라고 떼를 써 혼났다" 고도 술회했다.

이집트는 환심을 사려고 金총리의 공항도착 전 공항로에 차선까지 새로 그리는 정성도 보였다.

이집트의 국민총생산 (GNP) 은 우리의 5분의1 수준. 물론 金총리의 이번 중동 순방 초점도 경제통상외교다.

그러나 국경없는 경제전쟁에 임하는 이들 나라가 보여준 집요함과 정성은 섬뜩할 정도였다.

세계인들이 이렇게 뛰는지도 모른 채 '1만달러시대' 나 외치는 치기를 보이다 IMF 구제금융이란 치욕을 맞은 우리들의 자화상까지 오버랩되자 이 섬뜩함은 더해졌다.

그런데도 예루살렘 호텔방에서 받아본 국내 신문들은 '정태수 폭탄발언' '청문회 공방' '뒤틀린 정국' 이란 굵은 활자들로 가득했다.

예루살렘에서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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