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정부도 빅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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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부의 기능을 '배의 조타수' 에 비유했다.

정부의 기능을 조타수 (操舵手)에 비유한 것은 '파일럿 (pilot)' 의 소임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일럿이란 큰 배가 항구에 들어가거나 나갈 때 앞에서 길을 열어주는 도선사 (導船士) 를 말한다.

파일럿의 논리로 볼 때 시대에 따라 제일 먼저 바뀌어야 할 부분은 정부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개혁에 있어 스스로가 시범을 보여야 할 때 오히려 시장에 맡겨야 할 민간의 구조조정을 더 우선시했다.

정부가 리더십을 가지려면 먼저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고, 말로써 이해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서 국민에게 요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행히 중앙정부는 이제서야 바른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중앙정부의 특별지방행정기관 (예를 들면 지방국토관리청) 과 시.도간 통합움직임이 그것이다.

현재 12개 중앙부처 소관의 20개 기관이 무려 7천1백19개의 특별지방행정기관을 두고 있다.

이처럼 별도의 기관을 운영함에 따라 소모성 예산낭비는 물론이고, 유사한 업무를 지방자치단체와 중복처리함으로써 비능률과 혼란, 그리고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이중행정과 혼란의 한 단면을 보자. 노동조합에 대한 지도감독 및 노동쟁의는 시.도가, 근로감독과 산재.직업 관련 업무는 지방노동청이 맡는다.

비포장국도 및 도시지역 포장국도는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지역 밖의 포장국도는 건설교통부 산하 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직할하천의 하천부지 점용허가는 시장.군수가, 유수 (流水) 사용허가는 지방국토관리청이 담당한다.

농수산 및 경제통계의 전수조사는 각 시.도와 시.군.구의 통계부서가, 표본조사는 재정경제부 및 농수산통계사무소가 나눠 맡고 있다.

비능률과 낭비도 심각하다.

지방환경관리청이 공해배출시설의 설치.확인.환경계도를 함과 동시에 시.도의 환경관리과 등도 지도단속을 한다.

보훈대상자는 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는 시.도의 복지과로 가야 한다.

어민소득 증대를 위한다고 해양수산부 산하의 어촌지도소와 시.도의 수산과가 동시 점포를 열고 있다.

병무업무는 사실상 시.군.구와 읍.면.동에서 전담처리하고 있는데 지방병무청은 왜 필요한가.

도청에 과 (課) 하나 만들면 족할 것이다.

지방식품의약청이 생기면서 시.도 보건환경국과의 지휘계통 및 업무중복으로 오히려 부정 식의약품 유통 단속이 어려워진 것 같다.

지방에 내려와 있는 지방중소기업청과 공정거래사무소의 일은 종래 시.도의 지역경제국에서 하던 일로서 당연히 이중행정이 되고 있다.

이처럼 방만하게 설치된 특별행정기관의 기능을 시.도로 통합함으로써 최소한 3중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첫째,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

둘째, 지방국토관리청의 업무가 시.도로 이관되면 국도와 지방도간의 연계관리가 되고 시.군간의 분쟁조정을 쉽게 할 수 있게 되듯 기타 업무에 있어서도 횡적인 연계를 통한 효율적 행정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빅딜에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효과는 수도를 옮기지 않고도 천도 (遷都) 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청사를 지방으로 옮긴다고 해서 지방분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천도는 정부기능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야말로 진정한 천도를 실천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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