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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답] 8. 팔공산 파계사 조실 고송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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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 대담자 = 이은윤 종교전문위원

"기러기 푸른 하늘 나니, 그림자 고요한 강물 속에 잠긴다. 그러나 기러기 자취 남길 뜻 없고, 강물 또한 그림자 받아들일 마음 없네 (雁過長空 影沈寒水, 雁無遺종意 水無沈影心) ." 대구 팔공산 파계사 조실 고송 (古松) 선사 (94) 를 만나 보고자 부산행 새마을호를 타고 왜관 철교를 건넜다.

기러기떼가 철교 저 아래 하늘 높이 낙동강을 가로 질러 나른다. 순간 강물 속에 잠기는 기러기 그림자. 기러기 그림자 남길 뜻 전혀 없고, 강물 또한 그림자 받아들이려는 마음 일으킨 바 없건만 기러기와 낙동강 물은 분명한 겨울 정경을 그려낸다.

기러기와 강물의 무심함, 바로 그것이 선심 (禪心) 이며 부정적 표현의 불심인 '무심 (無心)' 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갈망하는 무심의 경계를 이날 운수좋게도 자신의 행장 (行狀 : 경력)에 조차 일체 무관심한 고송화상의 살림살이에서 발견, 실컷 만져보았다.

섹스에 의한 수태 (受胎) 이전의 자성 (自性) 이 모든 존재의 바탕이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 잉태돼 분별망상 없이 살다가 이 땅위로 나오는 순간 아버지 성을 따라 김 (金)가, 이 (李)가가 된다.

이때부터는 형제간에도 과자 한개를 놓고 서로 먹으려 다투고 네것, 내것을 분별하길 좋아한다. 내것과 네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던 어머니 뱃속의 10개월 동안이야말로 더 없는 극락이고 천당이었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의 자리는 이 극락이나 천당보다도 훨씬 더 초형이상학의 안락이며 열반이다. 노송화상의 "나는 더 모른다" 는 대답은 초형이상학의 불법 진리를 어찌 언어문자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불가지론 (不可知論)' 이다.

옛날 중국 선림의 도오원지선사 (769 - 835) 는 자신의 스승인 약산유엄화상을 알고 있느냐는 한 도반의 물음에 "모른다" 고 대답, 왜 네 스승도 모르느냐는 추궁을 받자 "몰라, 몰라" 라는 반복 화법으로 불법의 불가해성 (不可解性) 을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약산과 도오가 각기 다른 사람이라는 개체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인식영역 저 너머에 있는 불법의 숭고함을 드러내 보인 선의 세계다. 고송노장의 대답도 이같은 문법 (文法) 이다. 선이란 이처럼 아는 데서 모르는 데로 들어가는 역설 (逆說) 이다.>

문 : 도 (道) 라는 게 뭡니까.

답 : 눈 앞에 보이는 저 산들이 제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지 않은가.

아니 이 사람아,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속에 있네 그려 (雲在天水在甁)

<깨친 사람에게는 눈 앞에 보이는 두두물물 모두가 그대로 불법의 나타남이고 진여실상 (眞如實相) 이다. 그래서 선사들은 언제나 즉흥적이다. 지금 눈에 뜰 앞의 측백나무가 바로 부처고 화단의 작약꽃이 법신 (法身) 이라고 말한다.< p>

이른바 '현성공안 (現成公案)' 이라는 선의 즉흥성은 재즈라는 즉흥음악과도 상통한다. 일본의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사토 마사히코 (佐藤允彦.57) 는 재즈만의 특징인 스윙.블루노트같은 음악적 장치들을 팝이나 클래식까지 구사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재즈의 진정한 가치는 이제 즉흥뿐" 이라고 외친다.

정형적인 틀이 없는 재즈의 즉흥성과 현장성은 다른 음악이 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몽골 태생의 재즈 보컬리스트 사인호 남치락 (41) 은 재즈의 가치와 목표가 "쉬고 있는 두뇌에 충격을 주어 직관적 각성에 이르도록 하는것" 이라고 말한다. 재즈가 지향하는 '직관적 각성' 이 바로 선의 돈오 (頓悟) 다.

21세기를 우리는 흔히 '정보화 시대' 로 특징 짓는다. 그런데 정보산업의 세계적 선두주자인 미국의 빌 게이츠와 손정의 일본소프트뱅크 사장은 수많은 언론 인터뷰와 저명 대학의 초청 강연에서 한결같이 "정보화 시대의 핵심 요소는 아이디어 (창의력) 와 감수성 (직관력)" 이라고 강조한다.

선은 1천5백년 동안 수행의 핵심 내용으로 창의력과 직관력을 고양하는데 주력해 왔다. 정보화시대의 핵심요소와 선수행의 중요 내용이 이처럼 일치하는게 우연의 일치인지 인류문명이 지향해야 할 본래면목인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생명의 본질을 창의력과 절대 자유로 보는 선사상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명일 수 밖에 없는 앞으로의 천년을 이끌 인류의 보편윤리로서 손색이 없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이래서 고송화상의 말후구 '운재천 수재병' 이 뜻하는 즉흥성과 단순성.직관력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문 : 보거나 듣거나 배운게 아닌 스님의 말씀 한마디를 일러 주십시요.

답 : ×같은 놈들아!

<×는 개.똥.남녀 성기등 임의대로 갖다 붙이면 된다. 어쨌든 시원한 한마디 욕이다. 그러나 특정 대상은 없다. 선문답은 이처럼 애매모호하고 임의적인 게 그 특징이다. 모호하기 때문에 임의대로 생각해 볼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모호성과 임의성, 그리고 상식과 논리를 벗어난 격외 (格外) 의 역설적인 초논리는 질문자를 모순의 아성 속으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다.

역설과 모순의 막다른 골목을 뛰쳐나오기 위해 온갖 생각을 다 동원하다가 어느 마디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게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생명의 본질을 분명히 파악해 어떤 윤리규범을 따라 살아야 할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고송선사의 대답은 부처란 자수성가하는 것이니 부처님을 찾고 조사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도 지옥에 갈 죄업이라는 가르침이다. 선에서는 지독한 욕일수록 지극한 칭찬이다. 그래서 그의 욕은 모든 중생이 성불하기를 기원하는 외침이 된다. >

문 : 지옥과 극락이라는 게 있습니까.

답 : 있다.

문 : 마음과 부처도 있는 것입니까.

답 : 있다.

문 : 다른 스님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무고 공 (空) 이라 하던데요.

답 : 선생은 마누라가 있제, 그러니 선생은 유 (有) 고 중들은 마누라가 없으니 '무 (無)' 라 하는게 맞네 그려.

<선에서는 무와 유라는 상대적 구별이 전혀 무의미하다. 유무의 분별을 초월하고 나면 유라 해도 맞고 무라 맞는다. 신 (神) 이란 것도 믿는 사람에게는 있고 안믿는 사람에겐 없는 것이다. 경전도 인간이 만든 것이다.< p>

선은 인간 우선의 존재론이다. 그래서 선의 존재론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와 정반대인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다. 존재가 본질에 앞서는 점에서는 선과 실존주의가 일치한다.>

문 : 어찌해야 대통령까지 고민하는 요즈음의 초.중.고교 '왕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답 : 우물속 개구리가 달을 삼켜버렸다.(蛤마呑月).

<묘한 소식이다. 부처의 본체인 법신 (法身) 으로서의 개구리는 우물 밑바닥에 엎드려 있으면서도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는 물론 저 하늘 높이 떠있는 본래의 달까지도 꿀꺽 집어삼켜 버린다. 신비주의적인 허풍이나 신통력이 아니다. 부처도 뛰어넘는 조사선의 대기대용 (大機大用)에서는 개구리가 스스로 달을 삼켰느니라는 확신만 가지면 한 마음 (一心) 안에 우주를 감싸 안는다.< p>

수행이란 우주를 자신의 마음 속 안에 돌돌 싸서 말아넣는 우주령 (宇宙靈.Universal mind) 을 양생하는 훈련이다. 짓궂은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아놓고 빙둘러 서서 못도망가게 하는 장난이 옛날 시골농촌서 흔히 있었다.

요사이 왕따라는게 이 아이들 놀이와 같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은 크게 원력을 세워 우물속 개구리가 달을 삼켜버리듯 '사즉생 (死卽生)' 으로 급우들을 제압해 보면 어떨까. 불법에서 보면 개구리가 달을 삼키는 '합마탄월' 의 기량이면 왕따로부터 능히 해방될수 있다.>

문 : 어떤 것이 화상의 신통묘용 (神通妙用) 입니까.

답 : 먹을 물을 길어 나르고 땔나무를 져 나른다.

<고송선사는 차림새부터가 50년대 농촌 할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만공선사 (1871 - 1946)가 금강산 마하연 주지를 할 때 그 밑에서 참선을 했던 현 한국불교의 최고령 수좌다. 그는 이때까지 주지살이 한 일이 없다.< p>

(파계사 주지를 두번 했지만 이름만 걸고 제자들을 시켰다.) 그는 젊은 시절 물 긷고 나무하는 일도 많이 했다. 그의 대답은 고된 육체 노동을 참선과 똑같은 수행으로 승화시켜 자득 (自得) 의 경지에 이르른 한국 선불교의 적손 (適孫) 임을 자부하는 듯도 했다.

한문 선구 (禪句) 세례를 퍼부어 얼떨떨했다. 그러나 끝말은 불법이란 아주 간단명료해 자작자득 (自作自得) 하는 것 뿐이니 한마디도 말한게 없는 줄만 알란다 추사 (秋史) 글씨라는 '일광동조 (日光東照)' 편액이 걸린 조실방 앞에서 기념 사진 한장을 찍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왔다.>

[고송선사는]

▶1905년 경북 영천 출생

▶1920년 파계사 출가

▶1930 - 45년 금강산 마하연.유림사, 묘향산 보현사, 청암사 수도암등서 정진

▶1940년 한암선사 사법 제자

▶1954년 - 현재 파계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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