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에 돈 투입규모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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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융 구조조정을 올해 중 마무리짓기 위해 투입해야 할 재정 규모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64조원 한도내에서 공적자금 투입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최근 방한 (訪韓) 협상을 벌인 국제통화기금 (IMF).세계은행.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등 외국기관 관계자들은 너나없이 "금융 구조조정 비용을 늘려 잡아야 한다" 며 '훈수'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 공적자금 확대 외치는 외국기관들 =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어차피 부실 금융기관들에 재정투입을 할 바엔 이번에 충분히 해 자생력을 확실히 키워주라" 는 것.

최근 제2차 구조조정차관 관련 정책협의차 방한했던 픽터 세계은행 금융총국장은 재정경제부와 면담을 통해 "미국도 80년대 부실 저축대부조합을 처리하면서 재정투입을 불충분하게 했다가 나중에 더 많은 자금을 물린 경우가 있다" 면서 한국이 이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금융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을 더 투입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다.

S&P도 한국의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라는 점을 향후 등급 추가조정의 걸림돌 중 하나로 지적, 정부가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S&P는 당초 우리나라의 금융구조조정 소요 비용을 84조원 가량으로 추정했었으나 이번 방한조사를 통해 이를 1백20조원으로 대폭 늘려 잡기도 했다.

IMF 역시 이번 1분기 협상을 통해 제2금융권 구조조정을 다그치면서 필요시 공적자금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 금융구조조정에 실제로 돈 얼마나 들까 = 정부는 지난해 9월말 우선 21조원을 투입, 1단계 금융구조조정을 매듭지으면서 올해말까지 총 64조원을 들여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이중 1월말 현재 40조9천억원 (부실채권매입 19조9천억원+증자 13조3천억원+예금대지급 7조7천억원) 이 이미 쓰였고 남아있는 재원은 23조1천억원. 그러나 앞으로도 돈 들어갈 곳이 줄줄이 대기중인 형편이다.

재정투입 계획이 확정된 것만 해도 ▶서울.제일은행의 손실 보전분으로 은행당 줄잡아 4조~5조원 ▶5개 인수은행에 대한 추가손실 보전 예상액이 약 4조~5조원 ▶조흥은행+강원은행+현대종금에 2조5천억원 ▶평화은행에 2천억원 등 대략 15조~18조원.

여기다 양대 보증보험이 합병해 탄생한 서울보증보험, 7개 부실 생명보험사, 문을 닫은 상호신용금고와 신용협동조합 등 제2금융권의 구조조정에도 막대한 재정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 진퇴양난에 빠진 정부 = 정부로선 64조원이라는 예산도 어렵사리 확보한 만큼 추가재원 조달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입장이다.

불과 몇년 후면 재원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의 원금상환이 속속 돌아오는 데다 지난해와 올해분 이자만 따져봐도 8조원을 훌쩍 넘어서기 때문. 모두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세금으로 감당해야 하다 보니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이미 예정된 64조원의 틀을 벗어나 일반.특수은행의 후순위채권 매입 등에 16조원 가량이 곁가지로 추가 지원된 상태" 라면서 "대외신인도 문제 때문에 64조원 한도를 계속 고집하고 있긴 하지만 어차피 공적자금 투입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이라고 털어놓았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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