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중화주의, 우리 안의 외곬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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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요즘 책의 상당수는 목침이다. 1000쪽 내외가 허다한데, 이삼성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는 챔피언 급이다. 상·하권 1500쪽에 질문 또한 묵직하다. “왜 우리는 중화주의에 중독돼 중국 바깥(일본·청나라)의 움직임에 눈을 감았고, 그 결과 전쟁을 자초했나?” 누구나 품어봤을 질문을 한·중·일 비교사로 풀어내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만의 중화주의 실체가 드러난다. 즉 우리 중화주의는 외교전략을 넘어 세계관·우주관이자 이데올로기라는 게 문제다. 명분에 집착하는 외곬의 집단심리 탓임은 물론이다.

상식이지만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란 근대 식민주의와 달리 느슨한 중심부-주변부의 관계다. 눈여겨 볼 것은 일본이다. 중국이야 본래 종주국으로 명분·원칙(道)과 실리·변칙(術)을 함께 챙기는 유연한 스타일이었다지만, 일본도 영리했다. 필요할 때 중국이란 우산에 들락거리는 등 선택에 아주 능했다. 1392년 무로마치 막부가 명나라의 책봉을 받지만, 1411년 이후 외교를 단절했다. 훗날 청과도 국교는 맺지 않았지만, 무역 등 실리를 따로 챙겼으니 그들에게 중화주의란 외교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지고지선의 명분이자 가치였다. 그 때문에 이웃 일본의 역동적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임진왜란·청일전쟁을 불렀다. 뿐이던가? 옛 중국(명) 섬기기에 눈멀어 병자호란의 참화를 자초했다. 당시 삼학사 중 한 사람인 김상헌이야말로 중화주의 중독의 전형이겠지만,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할까? 한국만의 명분주의와 외곬 DNA가 주범이니 말이다. 최대 비극은 19세기다. 1840년 아편전쟁과 함께 중국의 천하질서는 무너졌지만, 우리의 중화주의 중독은 풀릴 줄 몰랐다. 내년으로 100년을 맞는 1910년 한일합방까지 내내 그랬다.

그 기간을 저자는 ‘잃어버린 70년’이라고 규정하지만, 눈먼 쇄국과 내부개혁 외면으로 버벅대다가 국권 상실까지 불렀다. 이후 근대사의 아픔을 많이 치유했다지만, 우리 안의 외곬의 DNA는 사라졌을까? 저자가 보기에 중화주의 중독은 여전하고, 그게 요즘은 한미동맹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한미동맹을 외교 전략의 모든 것이자, 이데올로기로 떠받든다면 옛 중화주의 중독과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다. 오해 마시라. 그는 섣부른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이데올로기로서의 한미동맹’ 지적 또한 매우 현실적인 사안이다.

일테면 중국 위협론이 그렇다. 중국이 커지면 한반도가 위험해진다는 논리가 중국 위협론인데, 그건 증거가 희박하다. 역사를 보면 중원이 안정되었을 때 한반도에 전쟁은 거의 없었다. 중원이 흔들렸을 때 몽골 침략, 병자호란, 임진왜란, 한일합병이 찾아왔다. 결론은 간단하다. 한·중·일 삼국 역사를 찬찬히 훑어보면 우리 핏속의 명분 우선주의, 도덕 과잉이 뚜렷이 보인다. 그게 갈등조정 능력 부족은 물론 대국을 읽는 전략 마인드 부재를 낳는 주범이라면, 그 또한 병은 병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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