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파동]누가 주도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검찰 사상 초유의 검사 집단행동 파문이 확산과 진화의 갈림길에 서있다.

파동 이틀째인 2일 서울지검을 비롯한 전국 각 지검.지청의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이를 확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동시에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무마를 위한 조치들도 신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상천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이날 법무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개적으로 진화에 나섰다.

"조금만 더 방치하다간 큰일 나겠다" 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라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까지 이날 오전에 "검찰 수뇌부는 흔들리지 말라" 고 언급했다.

이 사태를 여권이 어떻게 풀어가려는지에 대한 한 단서다.

朴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기강을 생명으로 하는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며 "부하들이 물러가란다고 검찰총장이 물러간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朴장관은 그러나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나 대전사태의 가혹한 처벌에 대해 반발할 소지가 있었던 게 사실" 이라고 인정했다.

일선의 반발을 '무슨 소리냐' 고 억압 일변도로 나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또 그럴 상황도 아닌 게 분명하다. 朴장관의 공개회견은 여론에 일부 기댄 측면도 있다.

그는 "비리를 척결하는 사정 (司正) 중추기관인 검찰은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어야 하며 억울한 측면만 강조할 경우 국민은 검찰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볼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검도 이날 전국 지검의 수석검사들을 불러 놓고 "수뇌부에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라" 며 멍석을 깔아놓았다.

이 역시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다독거리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법무부와 대검 수뇌부의 이런 조치들이 사태를 진화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겉으로는 잠복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흔들린 조직이 원상태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도 향후 처신이 곤혹스럽게 됐다.

이원성 (李源性) 대검차장은 "총장이 대전사태 이후 여러차례 사임의사를 윗선에 전달했다" 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 조직의 기강해이를 우려한 여권이 오히려 이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金총장으로선 이젠 사퇴 타이밍마저 놓쳐버린 셈이다.

검찰 수뇌부는 사상 초유의 항명과 집단행동 사태를 추스르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 첫 조치가 다음주께 있을 '인사' 에서 가시화할 전망이다.

朴장관은 "창의성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발탁하겠다" 고 공언했다.

李대검차장도 "인사에 대한 검사들의 불만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걸 잘 알고 있다" 며 "종래의 보직개념을 깨고 뭔가 보여주겠다" 고 말했다.

이런 발언들을 종합해보면 검찰은 말 그대로 조직을 바닥부터 뒤집는 인사조치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일선 검사들이 얼마나 수긍하겠느냐는 것이다.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지만 만일 검사들의 서명사태가 확산되기라도 한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이번 사태에 대해 긍정적 해석도 나온다.

정치검찰에 대한 비난여론이 국민뿐 아니라 검사들 내부에서부터 엄청나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종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