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놓고 하는 정계개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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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야가 총재회담의 조건을 놓고 승강이를 벌이던 차에 한화갑 (韓和甲) 국민회의총무가 대구.경북 정치인에 대한 여권의 흡수.결합론을 천명하자 한나라당은 회담거부를 시사하고 있다.

빅딜 후유증.지역감정 악화 등 사회불안은 늘고 있는데 정국의 해빙은 자꾸 요원해지고 있다.

국민회의의 정계개편 구상은 이미 여대야소 완성을 지나 취약지역인 영남에 세력을 확장하는 전국정당화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이런 계획이 간간이 흘러나오는 정도였는데 韓총무의 발언으로 공개.공식화되고 있다.

실제 작업이 얼마나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가시화될 것인가는 차치하고 발언 자체가 정국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당이익으로 볼 때 국민회의가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의 정치인들을 끌어들이려는 것이 이해가 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지역에서 정권에 대한 지지가 낮아진다면 국정운영의 큰 축이 흔들린다고 여권은 판단할 것이며 내년 4월 총선을 생각해서라도 세력을 넓혀 놓아야 하는 급박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또한 정계개편론을 규탄하는 한나라당의 뿌리도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다.

한국정치에서 정계개편은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으므로 국민회의에만 "인위적 개편의 유혹에서 벗어나라" 고 주문하는 것이 가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을 접는다 해도 국민회의가 내놓고 추진하려는 정계개편은 여러 면에서 우려와 걱정을 낳고 있다.

우선 명분과 방법의 문제다.

전국정당이라 함은 전국적으로 자연스럽고 순리 (順理) 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정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순리적 지지는 이 지역 출신의 몇몇 야당정치인을 데려온다고 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민심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이다.

이 지역이 지역차별이라는 인식 (또는 오해) 을 가지고 있다면 여권은 진정한 화합 정책으로 주민의 공감을 사야 한다.

그래야 정서가 바뀌고 이를 바탕으로 여권 정치세력의 형성이 가능할 것이다.

국민회의가 오랫동안 이 지역의 흡수를 추진했음에도 의원영입이 미미한 것도 대상이 된 의원들이 지역의 그런 정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식화된 정계개편론은 야당을 자극해 정국불안을 가중시킬 우려가 많다.

그렇지 않아도 야당은 마산에 이어 구미에서 '지역집회' 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식의 정치를 하지 말고 서로 화합해보자고 해서 얘기가 나온 것이 총재회담인데 한쪽이 다른쪽의 의원들을 끌어들이겠다고 한다면 화합이 되겠는가.

사회적으로도 빅딜의 후유증을 수습하고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려면 파업사태에서 지역정서와 연결된 정치성을 떼어내는 방향으로 일이 추진돼야 한다.

그런데 정계개편을 둘러싼 논란은 일을 거꾸로 몰고가 후유증의 치유에도 영향을 줄 우려가 없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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