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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봉 라일락'이 피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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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꽃을 피운 도상봉 화백의 라일락.

▶ 도상봉 화백이 그린 라일락 정물화.

한국 서양화단의 거목이었던 고 도상봉(1902~77) 화백이 생전에 즐겨 그리던 그의 집 정원의 라일락 꽃이 3일 다시 활짝 피었다. 도 화백의 집이 아닌 경기도 용인 한택식물원에서다.

'도상봉 라일락'은 도 화백이 1930년 서울 혜화동에 한옥을 마련하면서 앞뜰에 심은 것으로 수령이 거의 100년에 가까운 것이다. 도 화백은 생전에 라일락을 꺾어 조선백자에 꽂은 뒤 정물화를 그리길 좋아했다. 그가 남긴 라일락 정물화는 네 점으로 점당 1억~3억원을 호가한다. 그 집에는 미망인인 라상윤(102)씨와 큰아들 정섭씨 가족이 살고 있다.

그런 라일락이 한택식물원으로 옮겨간 까닭은 이렇다. 2001년 봄 집수리 때 인부들이 시멘트를 나무뿌리 근처에 쏟아부어 놓는 바람에 거의 말라죽게 됐다. 라씨는 평소 도 화백을 보는 듯 아끼던 라일락이 죽자 파내 버리게 했다. 누렇게 고사한 나무가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 후 정섭씨의 직장 후배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순재씨가 라일락을 자신의 남양주 농장에 옮겨 심었다. 이씨는 "평생 조경업을 해온 조경사도 라일락의 밑동이 그렇게 굵은 것은 처음 봤다고 한다"며 "옮겨 심은 지 1년이 돼도 고목에서 싹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경사의 도움을 받는 한편 한약재 찌꺼기를 퇴비로 주는 등 소생을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자 3년 전 작은 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씨는 도 화백의 체취가 묻어 있는 나무를 혼자 보기 아깝다며 지난 겨울 한택식물원에 기증했다.

거기서 5월 들어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정섭씨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는 듯 너무 기쁘다"며 "가족이 한택식물원을 찾아 다시 살아난 라일락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택식물원은 '도상봉 라일락' 주변을 테마관으로 꾸며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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