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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에 묻는다]11.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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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문화에 대한 사유가 우리처럼 척박한 사회에서 '문화의 세기' 를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거품 중의 거품, 허위의식 중의 허위의식이다. 우리 삶의 방향과 가치에 관계된 근본적인 문제들과 연결지었을 때만 문화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화두이고 의제 (議題) 일 수 있다.

문화는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의제인가. 어떤 의미에서. 또 "문화의 세기가 오고 있다" 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주장이며, 무슨 소리며,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겨냥한 메시지인가.

지난 30년간, 아니 해방 이후 50년간, 우리 사회를 이끌고 지배해온 것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라는 쌍두마차다. 이 지배적 권력체제가 사회를 이끄는 동안 사실상 변방에 내팽개쳐 있었던 것이 '문화' 다.

문화는 장장 50년간 우리에게 불요불급의 주변부 영역,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고 할 때의 그 '식후경' 처럼 빵 다음에나 생각해 볼 장식적 유한 여가활동,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치명상을 주지 않는 '삶의 꽃' 같은 것 - 이런 의미 이상의 것으로 인식된 적이 없다.

이 '꽃' 으로 인식된 문화는 글쎄, 예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선거 때 표 한 장 얻기 어렵고, 그것으로 '노랑돈' 한 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본 문화의 효용 (혹은 비효용) 이며, 문화가 변방에 방치된 이유다.

그런데 희극적이게도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 주로 '문화의 세기' 를 말하기 시작한 쪽은 바로 그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다.

어째서 이런 인식전환이 발생한 것일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어느날 보매, 문화영역이 정치적으로도 유용하고 산업적으로도 채산성 높은 분야라는 사실이 눈에 띈 것이다. 이 점을 크게 부각시킨 것이 문화산업과 문화시장이다.

문화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출과 고용창출이 가능한 새로운 산업영역으로, 그리고 문화시장은 광대한 확장 잠재력을 가진 무한시장으로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문화가 중요하다" 는 주장들이 퍼진 것은 이 개안 같지도 않은 '개안' (開眼) 이후다. 이것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고 인식전환인가. 천만에. 그것은 인식전환이 아니라 '역겨움' 의 원천이다.

그 인식방법에서 문화는 여전히 정치.경제의 도구적 수단영역으로 파악되고 정치논리와 산업.경제논리가 여전히 그 인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다 줄 것 같으니까 문화는 산업적으로 중요하고, 산업적으로 중요하니까 정치적으로도 중요하다 - 이런 생각은 인식전환은커녕 기존논리의 역겨운 연장이고 연속이다.

이 논리에서 보면 문화는 돈벌이 영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화는 빵이고 돈이고 표 (票) 며 홍보다. 그렇게 해서 문화는 다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장악된다.

그것은 '개발논리' 에 또다시 종속되고 정치의 선전선동에 여전히 예속된다. 문화에 대한 이 종류의 인식과 논리가 지배하는 한 21세기 한국에 문화의 세기는 없다.

문화의 세기란 '문화의 권리' 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일방적으로 예속되지 않는 시대, 문화영역이 시민사회와 함께 창조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3의 세력으로 나서는 시대, 창조적 문화를 함양하고 그 함양을 가능하게 할 사회환경의 조성이 전체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가치 차원에서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시대다.

문화의 권리 속에는 인권으로서의 표현과 사상의 자유, 문화창조권과 향수권, 문화주권, 환경권, 공존의 권리, 타락에 저항할 권리, 공익성의 권리 등이 포함된다.

문화산업은 산업상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기본적 문화적 의제들은 이런 것이다. 문화의 권리 개념은 그 의제들을 요약한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 연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세계 5대 오염도시' 의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오염도시는 그대로 두고 개발논리만으로 관광산업이 되겠는가. 문화 인프라와 문화 내용은 빈곤국 수준에 묶어둔 상태에서 하루 아침에 문화산업이 되겠는가.

관료와 정치집단이 홍보, 실적 선전, 기타 목적으로 막대한 낭비성 비용을 들여 일회적 '문화행사' 들을 기획, 조직,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나라에서 '문화' 가 되겠는가.

대전 엑스포, 경주 엑스포 같은 것을 자랑거리로 삼는 나라는 문화국가이기 어렵다. 그런 것은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수치' 다. 권리는 책임을 동반한다.

고려대 김우창 교수가 어디선가 말했듯 문화 사회는 '공공의 차원에서 사회적 자원들을 인문적 가치를 위해 번역할 줄 아는' 사회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민간 영역의 것이다.

그러나 그 '민' 이 썩었을 때는 어찌 하는가. 여기서 문화의 권리는 권리로만 끝나지 않고 시민사회에 상당량의 책임을 부과한다. 사회적 관용체제를 발전시킬 책임, 창조를 가능하게 할 민주적 사회환경을 확립시킬 책임, 인간 가치를 사회 발전의 핵심부에 두어야 할 책임,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잔존문화를 청산하고 천민자본주의 문화를 수정할 책임, 공공성에 헌신하고 그것을 지키고 감시하는 책임 등이 그것이다.

문화의 세기는 산타 영감 선물 보따리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세기다. 문화의 세기는 '공짜로' 오지 않는다. 밀레니엄을 공짜 선물의 시대로 착각하는 한 21세기가 우리에게 문화의 세기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다.

21세기의 세계에서는 문화의 전지구적 탈영토화 경향이 강화하고 문화산업 시장은 커질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문화생산.향수의 형식들이 나타날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문명의 충격을 조정하고 그 문명의 정신적 파탄을 보상할 방법을 찾아 길 떠나는 방황의 문화,가치 - 목표 - 지향의 상실증후군, 자기정체성을 찾으려는 절절한 요구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단숨에 되찾을 수 있는 낙원도 아니다. 미래의 시간대에도 성취와 상실, 성공과 실패, 웃음과 눈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나은 세계, 인간 박탈이 완화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지금 우리를 터무니 없이 들뜨게 하는 황당한 '밀레니엄 이데올로기' 에서 거품을 빼고 최소한의 성숙성을 도입하는 일부터가 문화의 세기를 위한 준비다. 성찰과 성숙의 가능성을 빼고 나면 인간에게 도대체 문화가 무엇이겠는가.

도정일 경희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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