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싸움꾼의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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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면

'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예선 결승>
○·후야오위 8단 ●·김지석 5단

제4보(43~50)=김지석 5단은 유명한 싸움꾼이다. 스스로도 싸움은 잘하지만 끝내기는 서툴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세돌 9단과 대국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엔 끝내기에도 이력이 붙고 끈기도 향상되면서 성적이 크게 좋아지고 있다.

43은 포석의 한 수다. 그러나 싸움꾼 김지석의 마음은 이미 중반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시 말해 43은 축머리이고 A에 건너 붙여 끊으려는 사전 공작인 것이다. 하지만 44로 응수한 뒤 막상 절단을 결행하려고 보니 그게 여의치 않다. ‘참고도 1’ 흑1, 3으로 끊어도 백이 4로 늘면 싸움이 쉽지 않은 것이다. 또 성급했구나 생각하며 김지석은 45로 방향을 튼다(백이 귀를 응수하면 이번에야말로 A가 강렬해진다). 하지만 여기서 또 받아줄 바보는 없다. 후야오위 8단도 즉각 46으로 협공하고 나섰다. 이제 난처해진 건 흑이다. 멀리 43도 외롭고 45도 외롭다. 45를 직접 움직인다는 건 너무 무겁다. 김지석은 할 수 없이 47로 방향을 틀어 ‘포기’를 택한다. 박영훈 9단은 “이 진행은 흑의 실패”라고 못을 박는다. 어디가 문제였을까. 43이나 45로는 ‘참고도 2’ 흑1로 파고드는 게 좋았다. 백이 2로 차단하면 3으로 뛰어 계속 A가 남는다는 것. 이건 흑이 좋은 그림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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