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따돌림 우려 '집단 따돌림'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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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초.중.고교 학생 4명 가운데 1명이 당해본 경험이 있다는 '왕따' (집단 따돌림) . 혹시 우리 아이가 피해자는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 해본 부모가 없을 정도로 왕따 현상은 깊고 넓게 우리 교육현장을 병들게 하고 있다.

급기야 26일엔 학생 사회에서 통용되던 이 은어가 국무회의 석상에 올라 그 대책이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괴롭힘을 당해온 아이들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린 대책인지 의문이 생긴다.

피해 학생에게 재택 학습을 시키고 이를 출석일수로 간주해주며 가해 학생은 전학보내거나 그 부모와 함께 봉사활동을 시키는 등 특별교육을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효과가 있음직한 대책 같지만 이것이 현장에 적용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왕따 학생을 '영따' (영원한 따돌림)' 로 만들 우려마저 있다.

실제 사례를 보자. 서울 모 초등학교 6학년 K군은 말투가 어눌하다 보니 놀림의 대상이 됐다.

어떤 아이는 물구나무를 시키고, 어떤 아이는 사타구니를 만지고 팔을 꺾지만 이에 저항할 줄 모른다.

자신을 놀린다는 얘기를 담임교사에게 했다가 괴롭힘의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경험 때문이다.

이처럼 왕따는 아이들만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그들만의 언어와 규칙으로 이뤄진다.

교육부의 대책은 왕따를 교사의 눈을 피한 보복성 '은따 (은근한 따돌림)' 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달초 왕따와 관련한 자료집을 발간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관계자는 "참으로 순진한 발상" 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담임교사가 우선 왕따 학생을 가려낼 정도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데 해결책이 있다" 고 말한다.

그리고는 섣불리 아이들 세계에 뛰어들어 벌로 단죄했다가는 일이 틀어진다고 권고한다.

가해학생.학부모에 대한 면담을 통해 피해 학생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설명하는 상담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행정편의적 대책보다 연수 등을 통해 상담교사를 길러내 아이들 눈 높이에서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멀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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