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여권 3천억원 비자금설 '꾼'연출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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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민회의 李모의원이 제기한 '구 여권 3천억원의 비자금설' 의 진상은 무엇일까. 李의원은 20일 "지난해 12월 한 제보자로부터 '구여권에서 3천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중 1천억원은 모 후보진영 대선자금으로 전달하고 2천억원은 비자금으로 갖고 있다' 는 주장과 함께 97년 6~10월 8개 은행이 발행한 수표사본을 전달받았다" 고 주장했다.

의혹이 불거지자 검찰은 21일 그동안 이에 대해 내사를 해왔음을 시인하고 진상의 일단을 공개했다.

대검 중수부 (李明載검사장)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건설업자 정모 (수감중) 씨가 측근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조성한 비자금" 이라며 수표사본을 전달해와 중수3과에서 즉각 확인작업에 나섰다는 것이다.

제출된 수표사본의 총 액면가액은 1천2백20억원. 그러나 검찰은 확인작업 결과 이중 70%인 8백50억원이 가짜로 드러나면서 제보의 신빙성이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1백만원권 수표는 1백억원으로, 10만원권 수표는 10억원으로 위조돼 있었다" 며 "제보자의 전력 등에 비쳐 금액.발행일자 등이 은행대장과 일치하는 나머지 3백70억원도 전혀 관계없는 사람의 것일 가능성이 커 내사를 중단했다" 고 말했다.

1백억원짜리 위조수표가 금융권의 확인없이 현금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를 바탕으로 자본력을 과시한 뒤 사기행각을 벌이는 '전문꾼' 들의 장난으로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에 따르면 제보자 정씨는 사기혐의로 3년을 복역한 전력 외에도 현재 공문서위조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인물. 수사 관계자는 정씨가 5공의 실세이던 H씨의 형과 재혼한 전처 金모씨에게 돈을 요구하던 과정에서 金씨가 "새 남편이 K의원.모 시중은행장 등과 함께 전직 대통령 비자금을 돈세탁했다" 며 수표사본을 보여주자 이를 입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정씨를 불러 조사했으나 "모든 것은 전처만이 안다" 고 진술, 金씨를 찾았으나 金씨 또한 사기 등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고 도피중이라 조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날 金씨와 함께 수표사본을 소지하고 있던 尹모씨를 지난해말 사기 혐의로 구속했던 수원지검에 내사자료를 보내 사실 여부를 확인토록 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3백70억원 수표의 발행인을 찾기 위해선 압수수색영장이 필요한 만큼 제보의 신뢰성을 다시 한번 수사팀과 논의한 뒤 수사착수 여부를 결정하겠다" 고 말했다.

한편 박지원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이날 구 여권 비자금설이 "사실무근" 이라며 "특히 청와대측이 관련자료를 검찰에 보냈다는 부분은 전혀 사실과 달라 이를 보도한 해당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구하겠다" 고 밝혔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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