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부담 늘어나는 ETF 천덕꾸러기 될 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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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펀드와 주식. 그동안 상장지수펀드(ETF)는 양쪽의 장점을 고루 갖춘 투자상품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제 양쪽에 낀 천덕꾸러기 상품이 될 판이다. 세금제도가 바뀌면서 펀드와 주식에 물리는 세금이 동시에 붙게 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25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내년부터 ETF에 증권거래세를 물리기로 했다. ETF는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되는 인덱스펀드. 엄연히 ‘펀드’이지만 주식처럼 거래되기 때문에 주식을 팔 때 붙이는 증권거래세를 부과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대신 세율을 주식(매도금액의 0.3%)보다는 낮은 0.1%로 정했다. 2002년 국내에 도입된 뒤 한동안 거래가 뜸했던 ETF시장은 2006년부터 빠르게 커왔다. 올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283억원, 상장된 종목 수는 43개로 2007년에 비해 배로 늘었다. 성과도 좋은 편이다. 올 들어 국내주식형펀드 수익률 톱10 중 4개가 상장지수펀드다. 운용보수가 0.5% 정도로 일반 인덱스펀드(1~2%)보다 싸고,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주식과 달리 증권거래세를 면제받았다는 게 가장 큰 인기요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이번 세제 개편으로 0.1%의 거래세가 붙으면 자연히 ETF 투자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투자자로서는 사실상 거래세를 두번 물게 되는 꼴이다. 올 연말 공모펀드에 대한 비과세 조치가 사라지면서 공모펀드의 일종인 ETF 역시 편입한 주식을 팔 땐 거래세 0.3%를 내기 때문이다. 운용사가 펀드를 운용하면서 거래세를 내고, 투자자가 펀드를 내다팔 때 거래세를 또 내는 ‘이중과세’다.

삼성투신운용 사봉하 ETF운용팀장은 “일반 펀드는 환매할 땐 거래세를 안 내는데, ETF는 펀드인데도 거래소에 상장됐다는 이유로 팔 때도 세금을 낸다”며 “ETF 투자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말 처음 상장된 국고채ETF는 거래세 도입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클 전망이다. 1년 수익률이 고작 4% 안팎인데 세금으로 수익률이 더 줄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국고채ETF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게 아니냐”며 걱정한다. 다음 달 이후 나올 예정인 인버스ETF(지수 움직임과 반대로 가는 상품)나 레버리지ETF(지수의 2배로 움직이는 상품) 역시 세금이 붙으면서 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한국거래소 이용국 상품관리팀장은 “ETF시장은 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이제 겨우 새로운 유형의 ETF를 내놓고 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마당에 이런 정책이 나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ETF에 증권거래세를 매기는 나라는 스위스(0.075%), 영국(0.5%), 대만(0.1%)이 있다. 미국·독일·일본은 주식이나 ETF 모두 증권거래세를 물리지 않는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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