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골프채로 외로움 저 멀리 날렸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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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10일 폐막된 한국프로골프협회 세미프로 테스트에서 17위로 입상한 고교생 골퍼 김연섭군(右)과 그를 지도한 프로 골퍼 김창헌씨. 신동연 기자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의 용인 플라자 CC에서 폐막된 '한국프로골프협회 세미프로 테스트'.

고교 2학년인 김연섭(18)군은 18번홀 파4코스에서 도박을 걸었다. 이틀간 벌어진 경기에서 그는 전날 73타를 기록했다. 좋은 성적이다. 홀컵까지는 불과 2.5m. 김군은 조심스레 공을 밀었다. '또로록-'.

"버디다! 됐다!"

당당히 세미프로 자격을 따낸 순간이었다. 순간 그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무더위와 혹독한 추위에 맞서며 보육원 한쪽에서 훈련하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골프 입문 5년째인 그는 이번 대회에서 종합 스코어 143타로 17위를 기록했다. 세미프로 테스트는 PGA 대회 출전 자격(프로)을 얻기 위한 전 단계다. 한해 수천명이 도전하지만 합격자는 고작 200명. 더욱이 고교생이 이 관문을 통과하기란 녹록지 않다.

"운동을 못하는 편이었어요. 농구나 배구를 할 땐 항상 후보로 밀려났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골프는 달랐어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뻥뻥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기분도 좋아졌어요."

김군은 초등학교 6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뒤 어린 여동생의 손을 잡고 충남 논산 계룡학사에 온 지 6개월가량 됐을 때였다. 당시 계룡학사엔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꿈나무 골프단'이 결성됐고 그는 주저없이 골프채를 잡았다. 보육원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골프채는 그의 친구이자 희망이었다.

산악구보 등으로 체력을 다졌고 하루 수천개씩 공을 쳤다. 그의 성실한 자세는 금방 김창헌(51)프로의 눈에 들었다. 김 프로는 '꿈나무 골프단'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본 뒤 무료 레슨을 자청, 일요일마다 논산에 내려와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육원에서 나가도록 돼 있지만 아이들은 사회에 나갈 준비가 미흡한 편이죠. 그런 면에서 골프는 든든한 무기가 돼줄 겁니다."

김군은 이제 새로운 꿈에 도전하려 한다. 10년 후쯤 최경주 선수처럼 PGA 투어 무대에 서는 것이다.

"동생 순정이가 사춘기가 됐어요. 하고 싶은 것도,먹고 싶은 것도 많을텐데…빨리 성공해 이것저것 많이 해주고 싶어요."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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