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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세상보기]짧은 豫測 긴 豫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국은행이 올해의 경제 성장률을 3.2%로 예측 (豫測) 한 데 대해 화제가 분분하다.

3.2%의 성장률은 지금까지 나온 예측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이것이 다른 데도 아니고 지극히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한국은행에서 나왔다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우리 앞에는 네가지 성장률 예측이 '적중 (的中) 의 낙점' 을 기다리게 됐다.

그 네가지는 ①호전되기는 해도 그래도 마이너스 성장에 머무른다는 국제통화기금 (IMF) 의 - 1% 성장. ②마이너스 성장을 모면하고 겨우 플러스 성장으로 턱걸이한다는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0.2~1% 성장. ③저성장이지만 완연한 성장궤도에 진입한다는 재경부 및 한국개발연구원의 2~2.2% 성장. ④98년도 4분기에 경기 저점 (底點) 을 통과하고 본격적인 고성장으로의 재도약을 준비한다는 한국은행의 3.2% 성장이 그것이다.

- 5.5%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98년의 경기 침체가 과연 올해는 어떻게 반전될까. 그러나 결과가 기다려진다고 뭐 이런 예측치들이 어떤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96년과 97년의 예측이 실제와 크게 어긋난 사례를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경제예측의 문제점 세가지를 지적한다면 실제와 틀린다는 것 하나, 예측이 너무 늦게 나온다는 것 둘, 그리고 예측을 추후에 수정한다는 것 셋이 있다.

지각 (遲刻) 예측은 올해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의 99년 고성장 예측도 1월초에 나왔다.

99년 예측이라면 늦어도 전년도인 98년 12월 중이나 4분기초, 즉 10월초에는 나와야 한다.

그래야 '미리' 짐작한다는 그 미리의 뜻이 산다.

그 해의 일을 그해 들어 말한다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후측에 가깝다.

또 예측치를 자꾸 수정한다는 것은 이미 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으려는 도로 (徒勞) 와 같다.

일구이언 (一口二言) 과도 다를 바 없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올해의 성장률은 1%였다.

불과 한달 남짓 사이에 마음도 바꾸고 말도 바꿔 3.2%로 높인 것이다.

96년엔 이런 수정도 있었다.

당초 95년 12월에 발표한 한국은행의 96년 경상적자 예측치는 64억달러였다.

이것이 96년 들어 계속 수정되다가 연말을 눈앞에 둔 12월초에는 2백20억달러가 됐다.

그 해의 적자 실적치는 2백37억달러였다.

예측이 틀렸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지우고 다시 쓰는지 모르겠다.

경제운용 계획이나 자금 사용계획 같은 것은 현실에 맞게 고칠 수 있어도 예측은 고칠 수 없다.

점쟁이가 점괘를 자꾸 바꾸면 그 점쟁이를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믿고 싶지 않은 예측도 있다.

대개 예측의 확대판인 예언 (豫言) , 그 중에서도 불길한 예언이 여기에 속한다.

16세기 프랑스의 의사이자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1999년 지구 멸망설이 대표적이다.

"1999년 7월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앙골모아의 대왕을 부활시킨다" 는 대목이 바로 지구 멸망 또는 수천만명이 죽는 대재앙을 예언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앙골모아 대왕이 앙골라의 임금인지 몽골 (몽고) 의 대왕인지 잘 모른다.

어디 그의 얼굴 좀 보면 좋겠다.

이 예언이 3차대전일 수도 있고 행성 직렬에 의한 지진.홍수일 수도 있고, 전염병의 창궐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가능성은 지금 모두 부인되고 있다.

한가지 미심쩍은 것은 컴퓨터가 서기 2000년을 1900년으로 읽는 데서 오는 밀레니엄버그. 이로 인한 문명의 이기 (利器) 들의 잦은 고장과 대형 사고는 어떻게 전개될지 정말 예측과 예언을 불허한다.

이른바 'Y2K' 문제 해결에 둔감한 한국 사회는 '노스트라다무스적 (的) 예언' 의 수준으로 이 문제를 봐야 할 것 같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술이 많이 팔릴까, 사과나무 묘목이 많이 팔릴까. 아, 볼 것 많고 기다릴 것 많은 1999년이여!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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