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청문회→비리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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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제청문회를 둘러싼 혼란과 공방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특위의석수 공방,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 증언문제, 여당의 국정조사계획서 일방처리 등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이번엔 여당이 전 정권의 거대비리를 추궁하겠다고 하고 야당은 정치보복이라고 반발해 청문회는 더욱 어지럽게 돌고 있다.

정책청문회는 여야 총재회담의 합의사항이다.

경제청문회를 생산적으로 치러내려면, 그래서 한국사회가 천금같은 교훈과 반성을 얻어내려면 여야는 청문회의 본질과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의 5공비리청문회 유 (類) 와 달리 경제청문회의 주 (主) 는 경제구조.정부역할 등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정책적 추궁이다.

관련 인사의 책임이 드러나거나 비리가 불거질 수도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종 (從) 이다.

이런 주종이 바뀌면 정책토론은 실종된다.

한풀이.보복.비리폭로.맞고함만이 가득 차 청문회는 정책개선은커녕 또다른 정쟁과 긴장을 낳을 것이다.

여당은 '전 정권 거대비리' 의 폭로를 시사하는데 분명한 혐의를 잡았다면 청문회까지 갈 것 없이 바로 검찰에 고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원칙이 그렇거니와 비리혐의란 것은 엄정한 검찰수사로도 확증에 어려움이 많은데 주로 의원의 머리와 입에 의존하는 청문회로는 한계가 많다는 현실적 사정도 있다.

여당이 확인했다는 비리가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지만 TV카메라 앞에서 폭로.방어가 반복되면 청문회는 정치쇼가 될는지 모른다.

일설에는 여당이 한보가 92년 대선때 김영삼후보측에 수백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설을 따질 것이라 하는데 폭로가 대선자금과 관계된다면 혼란의 파장은 자명하다.

청문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金전대통령측과 한나라당은 현 정권의 대선자금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국정조사계획서를 일방.변칙적으로 처리했다고 청문회를 거부하는데 자신들이 국회법 정신을 무시하고 동수 (同數) 를 고집한 것도 사태에 일부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여대야소니 특위구성도 그 비율이 옳다.

청문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국회 529호실 사태와 여당의 법안 변칙처리로 정국이 꽁꽁 얼어 있으니 야당에만 "당장 청문회에 합류하라" 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야당이 대화에 응하고 특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여당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안기부직원이 안기부법 정신에 어긋나게 여당을 돕는 내각제 대책 문건을 작성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따라서 여권은 이 부분에 대해 조치를 취하고 나아가 논란의 불씨인 안기부 정치정보 수집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는 문제를 야당과 논의해야 한다.

거시적으로는 여야간에 529호실 사건과 청문회 등 주요 현안을 빅딜할 수 있는 총재회담 같은 방안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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