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법조비리]컴퓨터서 '수사정답'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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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컴퓨터부터 확보하라. " 컴퓨터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대상 0순위로 자리잡았다.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사건은 물론 환란 (換亂) 사건.총풍 (銃風) 사건 등 최근 벌어진 굵직굵직한 사건의 결정적인 수사 실마리가 컴퓨터 속의 파일에서 발견됐기 때문. 李변호사는 92년부터 '엑셀' 이라는 통계처리 프로그램을 사용해 수임장부를 관리해온 컴퓨터 전문가.

그날의 사건 수임 상황을 컴퓨터로 정리한 뒤 양복 호주머니에 디스켓을 넣어가지고 다녔으며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됐다.

李변호사는 사건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8일 급하게 파일을 지워버렸지만 대검에서 내려간 컴퓨터전문 수사관 2명이 1천9백여개의 파일을 1백% 복구해냈다.

공개된 사건장부와 같은 엑셀파일은 모두 44개로 이번 사건의 또다른 복병이 될 전망. 검찰 관계자는 "13일 李변호사의 서울집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한 가장 큰 이유도 노트북PC를 찾기 위한 것" 이라고 귀띔했다.

지난해 5월 외환위기와 관련해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됐던 강경식 (姜慶植) 전 경제부총리도 컴퓨터 속에 꼼꼼히 기록해둔 비망록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그는 '경영전략계획서' 라는 이름의 비망록에 '반드시 대선에 출마하겠다' '일부에서는 서울시장 출마를 권한다' 는 내용을 적어놓아 검찰로부터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경제관료로서의 치적에 누가 될 만한 외환위기를 회피한 것 아니냐" 는 추궁을 받았다.

지난해 가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총풍사건에서도 검찰은 컴퓨터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11월 중순 한성기 (韓成基) 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북측인사와의 베이징 (北京) 접촉내용을 담은 '북한카드 보고서' 를 컴퓨터 속에서 발견, 이를 이회창 (李會昌) 후보측에 전달했는지 추궁할 수 있었다.

또다른 관련자인 장석중 (張錫重) 씨의 대북접촉 상황도 컴퓨터 속에서 찾아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최근 컴퓨터분야 전문검사 및 수사관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검 중앙수사부는 해커가 부럽지 않은 컴퓨터 전문가를 확보하고 있으며 서울지검에선 해커출신 컴퓨터 전문가를 정보범죄 수사에 활용하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는 컴퓨터가 많이 보급될수록 좋지만 최근 변호사업계에서는 '사무장보다 컴퓨터부터 없애라' 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고 전했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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