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묻는다]21세기 여성 역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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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과거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했던 경계는 지금 명백히 무너지고 있다.

미래를 떠맡을 신세대는 중성적 이미지, 곧 유니섹스를 선호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경계보다 다양성과 개성이 개인의 행위를 결정한다는 새로운 인간형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 세기에는 남성/여성의 구분보다 인간/비인간, 현실/사이버, 다양성/획일화의 이분화가 더 사회체제 유지의 암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적 가치가 새로운 대안적 가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남성/여성, 이성/감성, 진보/보수 등 획일.고정.범주적 사고가 지배했던 근대는 이제 과거의 사회로 멀어지고 있다.

유연성.다양성이 이 시대를 열어가는 문화적 화두로 등장했다.

이성.진보.혁명.주체.권력.지배.소유 등으로 표현됐던 남성적 가치는 나눔.보살핌.의사소통.배려.신뢰 등 여성적 가치로 대체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름하여 3F (feeling.fiction.female) 시대. 주요 생산이 제조에서 서비스로 바뀌게 되면서 미래에는 여성의 활동 폭이 넓어지는 역사의 진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점에 여성학자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그러나 이같은 가치의 변화를 인정하더라도 구체적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세계화.정보화가 가속화될 경우 과거와 달리 무한경쟁 사회가 될 것이며 노동시간 외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더욱 소외.주변화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이 결과는 소수의 상층 여성들은 사회적 역할을 찾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여성은 더욱 소외.빈곤화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야기된다.

이런 이유로 장하진 교수 (충남대.한국여성연구소 소장) 는 "21세기 사회운동의 최대 이슈는 여성운동일 것" 이라고 전망한다.

산업화의 주요한 특징 중에 하나가 일과 가정의 분리지만 앞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가정이 해체되면서 사회는 개인 단위로 변화하게 될 것이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여성 문제는 남녀를 구분하는 전통적 가치와 변화된 사회적 조건이 모순적으로 격돌하는 가장 민감한 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마지막 해방은 노동해방도 아니고 민족해방도 아니며 결국 여성 해방이 될 것" 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처럼 21세기는 여성이 해방의 주체이자 곧 대상이 되는 세기가 될 것 같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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