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밀려난 야]강경저지 무위… 수습대책 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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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이 깊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

여권이 세차례나 본회의를 변칙 운영했지만 과거처럼 변변히 몸싸움조차 못해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급기야 6일 저녁부터 무기한 철야농성에 들어가며 강경투쟁을 외치고 있지만 그나마 장기전으로 갈 경우 전투력이 유지되리란 보장도 없다.

철야농성도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다.

투쟁경험이 있는 재야출신 초선의원들이 일방적으로 농성을 결행하면서 지도부가 끌려간 형국이다.

물론 6, 7일 연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격렬한 대여 (對與) 성토가 벌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눈을 뻔히 뜨고 연이어 농락당한 참담한 심정은 언제든 무기력한 지도부 비난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패배감을 해소할 묘안이나 대여 투쟁으로 묶어낼 결속력이 없다는 점이 한나라당의 한계다.

7일 세번째 변칙 처리 직후 의총에서는 내홍 (內訌) 조짐까지 보였다.

회의 주재를 총무단이 하느냐, 정치사찰특위가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고 "초선이 건방지게…" "중진이 뭐 했느냐" 는 맞고함도 나왔다.

이회창 (李會昌) 총재는 이날 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타협하지 않겠다" 면서 "어떤 방법도 배제하지 않겠다" 고 말했다.

대여 투쟁 방향을 '안기부 정치사찰' 로 초점을 모으고, 대통령의 '정치사찰' 시인과 사과, 이종찬 (李鍾贊) 안기부장 파면을 거듭 촉구했다.

여야간에 걸려 있는 여러 현안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주고받을 수 없는 당내 사정도 협상을 통한 해결을 어렵게 한다.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 부자의 출석이 걸려있는 경제청문회는 민주계에, 徐의원 체포동의안은 李총재 자신을 시험하는 관건이다.

'국회 529호실 문제' 엔 이미 소속의원 11명이 출국금지돼 있다.

강경투쟁도, 타협도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안팎으로 가위눌리고 있는 처지다.

이런 상황을 빨리 수습하지 못할 경우 여권의 정계개편 공세에 더욱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李총재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李총재는 '탄압받는 야당 지도자' 로서의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하고 강공 일변도의 여당에 대한 비판여론이 형성되길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李총재는 "이제 잃을 것은 모두 잃었으며 남은 것은 전력으로 대여투쟁에 나서는 것 뿐" 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李총재가 대여투쟁을 끝까지 치러낼 지도력과 전략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가 정치생명을 건 향후 투쟁에서 당내 지도력을 확보하고 야당지도자의 면모를 확립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李총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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