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사찰 미국에서는…]96년 '파일게이트'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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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의원들이나 행정부 인사들에 대한 '개인 파일' 을 죄 갖고 있다.

국가안보 유지나 범죄 색출 또는 인사때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설혹 대통령이라 해도 파일을 마음대로 꺼내보거나 쓰고 싶은대로 '활용' 할 수 없다.

또 이같은 파일은 연방수사국 (FBI) 등 정보기관만이 작성해 갖고 있을 수 있지 백악관 어느 곳에서도 독자적으로 정보수집을 할 수 없다.

백악관은 법으로 정해진 용도와 방법에 따라 일일이 기록을 남기며 FBI 등으로부터 필요한 자료만 받아다 활용한 다음 모두 다 백악관 문서보관소에 넘겨야 한다.

FBI 등 정보기관은 더구나 의회의 엄격한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이처럼 투명한 장치를 갖춘 미국에서도 지난 96년 이른바 '파일 게이트' 라는 정치적 사건이 터져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고 백악관 간부가 사임하는 선에서 결말이 났다.

그러나 이때 미 의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자료 요구를 하고 백악관과 FBI를 몰아붙였지 자료를 '탈취' 하지는 않았다.

◇ 발단 = 96년 6월초 공화당이 주도하던 하원은 백악관이 총 3백29명에 대한 FBI 비밀파일을 불법으로 가져갔다며 포문을 열었다.

파일에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 공화당 중진들 것과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공보비서관 것도 들어 있었다.

당시 하원의 '정부개혁 및 감시위원회' 는 다른 의혹 사건을 조사하던 중 의회의 권한으로 백악관의 방대한 자료를 넘겨받으면서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백악관은 이 자료들을 예컨대 "백악관 집무실 출입 허가를 위해 필요하다" 는 등의 이유를 대고 입수했으며 관련기록을 일일이 작성해 남겼다.

서류 없이는 단 한건의 파일도 받을 수 없고 기록도 다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기' 위한 '정적 (政敵) 명단' 이라고 비난했다.

백악관 출입허가와 관계없는 사람들도 명단에 있었던 것이다.

◇ 백악관.FBI의 대응 = 백악관측은 "관료.행정적 잘못으로 '부적절' 하게 자료를 받았으나 정치적으로 악용하지는 않았으며, '집무실 출입 허가' 운운하는 서류는 개인파일이 필요할 때 항상 그렇게 써오던 '표준 형식' " 이라고 해명했다.

루이스 프리 당시 FBI 국장은 곧 철저한 자체감사를 지시했고 결과를 의회에 보고했다.

보고서에서 프리 국장은 "백악관에 비밀자료를 줄 때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새 규정을 만들었다" 고 밝혔다.

그런데도 '권력남용' '헌법준수 의지 의심' 등 공화당의 공격이 거세지자 백악관 비서실장이 "잘못을 인정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는 백악관의 공식사과를 내놓았다.

그래도 비난이 계속되자 며칠 뒤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같은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며 어떤 형태로든 정적 리스트같은 것은 만들지 않을 것" 이라는 요지로 유감을 표명했다.

◇ 수사.문책조치 =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하원은 청문회를 소집했으며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결정했다.

청문회에서 백악관이 불법으로 가져간 파일 수가 6백건을 넘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백악관 개인보안담당 총책임자였던 크레이그 리빙스턴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 며 사임했다.

그러나 그는 "백악관의 어느 누구도 문제의 파일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사임한다" 고 토를 달았다.

의회는 이어 FBI 수석변호사이던 하워드 샤피로의 해임을 요구했고 법무부는 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는 결국 문제의 파일들을 가져다 일일이 지문감식까지 벌여 어느 누구도 서류에 직접 손대지 않았다는 등의 사실을 밝힐 때까지 진행됐다.

샤피로는 해임되지는 않았지만 '민간 법률회사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FBI를 떠났다.

◇ 여론동향 =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의 조사에 따르면 18%만이 백악관의 해명을 믿어줬고 68%는 공화당의 공격이 맞을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더 이상의 불법행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청문회.수사는 종결됐다.

백악관은 법적으로는 해방됐으나 여론은 한동안 악화됐다.

비밀자료를 받아보는 절차도 종전보다 한층 까다로워졌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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