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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화 1위 'K2코리아' 정영훈 대표 "불황때 도약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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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였는데 저절로 끊게 되더군요. 내가 건강하지 못하면 내 가족뿐 아니라 회사 직원과 직원 가족들까지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등산용품 K2코리아의 정영훈(35) 대표이사는 창업주인 고 정동남 사장의 2남3녀 가운데 장남이다. 고 정 사장은 등산용품 전문기업인이자 산악인이었다. 1972년 첫 국산 등산화인 '로바'를 만들었으며 76년부터 브랜드를 K2로 바꿔 양산을 했다. 매주 산을 오르는 소문난 등반가였던 그는 2002년 북한산을 오르다 추락해 숨졌다. K2는 등산전문가를 중심으로 '한국인의 발에 잘 맞는 기능성 등산화'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꾸준히 성장해 왔다. 현재 K2는 국내 등산화 시장점유율 전체 1위다. 전체 아웃도어용품(스포츠.레저 등 야외활동 상품) 시장에선 코오롱스포츠.노스페이스에 이어 3위다.

가업을 이어받은 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1년간 한 대기업에서 근무한 뒤 97년 K2에 계장으로 입사했다. 부친이 작고한 다음해인 2003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갑작스럽게 경영권을 맡은 정 대표는 금연과 함께 등산을 시작했다. 원래 그는 등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2년간 매주 빼놓지 않고 등산을 한 덕에 이제는 전국 각지의 산이 훤하다. 시장 조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등산이지만 이제는 즐겁게 산을 탄다.

"처음엔 산에 가는 게 두려웠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나니까요. 하지만 아버지가 왜 그토록 산을 좋아하셨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는 산에 오르면서 마주치는 등산객마다 신발과 옷부터 살핀다. 그리고는 '아직도 K2 등산화를 안 신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올 들어 K2는 등산 전문가들의 제품 중심에서 일반 대중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변신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40개였던 대리점은 올 들어 두배가 넘는 99개로 늘어났다. 연말까지는 세배인 120개로 늘릴 계획이다.

판로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미 10개 백화점에 매장을 열었고 내년 말까지 전국 주요 백화점 50여곳에 매장을 열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대형 백화점에 단독 매장 설립도 구상 중이다. 최근에는 중저가 등산용품인 '라이크빈'을 앞세워 홈플러스.롯데마트 등에 입점하는 등 할인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극심한 내수 불황 속에 K2가 이처럼 공격적인 경영에 나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정 대표는 "주5일 근무제로 야외활동이 늘어나는 지금이야말로 제2 도약의 적기"라고 말했다. 적극적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한다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인 K2를 코오롱이나 노스페이스에 버금가는 대형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 판매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피는 전산망을 구축하고, 서울 성수동에는 대형 물류센터를 세웠다. 또 다음달부터 TV광고를 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제품 디자인 강화를 위해 디자인실을 따로 독립시켰다.

정 대표 부친은 돌발적인 죽음으로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신용'을 되새긴다. 그것을 그는 선친이 남긴 유언이라고 여긴다.

"사업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신용을 잃으면 안 된다고 하셨죠. 돈이 없어도 신용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신용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평생 단 한번도 직원들 월급날을 어긴 적이 없고 대금 결제 약속을 깨뜨린 적이 없는 선친의 원칙을 기억한다. 디자인이 유행에 뒤떨어질 수는 있어도 기능과 품질만은 최고여야 한다는 선친의 고집도 대물림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역량은 대기업이나 외국기업에 비해 약합니다. 하지만 품질과 브랜드 파워를 키우면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수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로 만든 K2로 대기업.외국 기업을 따돌리고 아웃도어 용품 전체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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