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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비 올려라” “이주대책 세워라” … 플래카드만 600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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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07면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일대의 활어 유통 단지. 대략 15년 전부터 활어 유통업체가 하나둘 모이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조성됐다. 상인들은 미사지구에 보금자리 주택만 짓지 말고 유통단지도 만들어달라고 정부에 요구한다. 신인섭 기자

수도권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곳곳에는 요즘 플래카드가 물결을 이룬다. 그린벨트를 풀어 서민용 보금자리단지나 지역 시설을 만들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에 맞서 개발 반대나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내건 플래카드다.

보금자리주택 예정지 ‘하남 미사지구’ 가보니

대표적인 곳이 올 5월 보금자리 단지로 정해진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 20일 찾은 미사리 조정경기장과 미사지구 사이 대로변 2~3㎞ 구간은 수백 장의 플래카드가 아우성치고 있었다. 주민대책위 윤상구 사무국장은 “750개 정도 붙였는데 하남시청에서 일부 떼 가고 남은 게 600개쯤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 예정지 앞 대로변에 촘촘히 걸린 플래카드들.

주민들은 지구 이름에 ‘미사’가 들어간 것부터 불만스럽다고 했다. 주민 이모씨는 “하남시의 망월·풍산·선·덕풍동의 전부나 일부가 지구에 포함되지만 미사동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며 “미사지구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엉터리”라고 말했다. 주민대책위원회는 지구 지정 자체를 폐지하거나 2005년과 2006년에 먼저 풀린 그린벨트 우선 해제 지역만이라도 미사지구에서 빼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덕진(67) 위원장은 “정부가 주민과 사전 협의를 해 가며 지구 지정을 할 수 있었는데 특별법으로 밀어붙이니 어리둥절할 뿐”이라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집안의 경우 당장 조상 묘 70여 기를 이장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걱정했다. 대책위는 올 7월 국토해양부에 낸 진정서에서 “개발제한구역 지정 후 원주민들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왔고 수많은 벌금과 이행강제금을 부담하는 등 물질적·심리적 고통을 받아 왔으나 정부는 이에 대한 보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과천시가 그린벨트 지역에 세운 입간판과 주민이 내건 플래카드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린벨트 풀린 지 3~4년 만에 수용되기도
하남 미사지구의 면적은 평촌신도시(510만㎡)보다 큰 546만6000㎡(165만 평)다.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네 곳 중 가장 크다. 미사지구 면적의 18%는 2007년 5월 집단취락지역이라는 이유로 그린벨트에서 풀린 ‘우선해제지역’이다. 주민들이 40년 가까이 재산권 행사를 못하다가 3~4년 전에야 비로소 해금이 시작된 곳이다. 박 위원장은 “기반시설을 깔아 놓고 이제 막 건축 등의 ‘행위’를 하려고 하는 단계에서 수용당하게 됐다”며 “우리의 보금자리까지 내줘야 하는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일”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는 게 싫다고 했다. 주민 이씨는 “50대 이상의 주민은 대부분 이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온 구호가 ‘원주민 보금자리 짓밟는 보금자리 정책 결사 반대한다’다.

그린벨트 해제 이후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해서 땅을 구입한 외지인들도 불만이다. 2006년 4월 지인들과 풍산동의 1884㎡(570평) 규모 대지를 구입한 조두희(60)씨. 그는 “무주택자가 집을 짓기 위해 산 땅을 가져가면서 입주권이나 이주자 택지 하나 주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비슷한 처지의 12명과 함께 관계기관에 대책을 호소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운계약서 썼다가 보상가만 덜 받아”
지구에 포함된 그린벨트 미해제 지역의 지주들은 보상 가격이 낮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지주 김모씨는 “해제 지역의 땅값은 3.3㎡에 최고 600만~800만원 하는데 그린벨트로 묶인 곳은 겨우 100만~200만원”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정부가 이중 삼중으로 눌러 온 땅값을 기준으로 보상가격을 책정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그린벨트로 묶은 땅에 토지거래허가제와 실거래가신고제까지 시행해 땅값이 정상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윤 사무국장은 “세금을 덜 내려고 매매 가격을 낮게 신고한 ‘다운계약서’와 공시지가, 주택공시가격이 보상 기준 가격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수산물을 취급하는 하남시 수산물 시장 지역의 상인들은 “땀 흘려 일군 상권을 모두 포기해야 할 처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남 활어단지는 수도권 활어 유통의 중심축이다. 노량진·가락동 등지로 가는 활어들이 가장 먼저 모이는 곳이다. 그린벨트가 해제되면서 서울 지역 도매시장 활어 상인은 물론 인천 활어단지 상인들이 몰려들면서 70여 곳이던 활어 유통업체가 현재 175곳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현재 5만㎡(약 1만5000평) 규모의 미사지구 내 대체 부지를 요구하고 있다. 고속도로 등 교통 여건이 좋고 소비지인 서울이 가깝기 때문이다. 문영춘 하남수산물상인연합회장은 “연간 1000억원대의 활어 유통의 메카로 만든 상인들의 노고는 보상받아야 한다”며 “조성 원가 수준의 가격에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천에서는 ‘특별분양권 사기’ 주의보
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시끄러운 곳은 미사지구뿐이 아니다.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의 속칭 ‘꿀벌마을’. 경마공원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눈에 들어오는 비닐하우스촌이다. 100여 가구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간 살고 있다. 이곳이 부쩍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사용료를 받고 토지 이용을 허락하던 지주들이 명도소송을 진행해 주민들을 내쫓으려 했던 2년 전이다. 과천시가 이 일대 18만5000㎡에 레저문화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을 때다. 지금은 빛 바랜 ‘강제 철거 반대’ 플래카드가 걸린 것도 이 무렵이다.

빈곤사회연대 관계자는 “땅을 매입한 사람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철거를 주도했다”고 전했다. 최근에 걸린 플래카드도 눈에 띈다. 올 6월 대법원이 비닐하우스촌의 주소지를 인정해 달라는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과천시는 이를 빌미로 ‘특별분양권 사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천시 관계자는 “꿀벌마을 일대에는 일반건축물이 두 동 있고 나머지는 비닐하우스인데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사업 추진에 지장을 주는 일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과천시는 그린벨트인 과천지식정보타운 예정지에 비닐하우스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한때 골머리를 앓았다. 상가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는 헛소문 때문이었다.

과천시 관계자는 “최근 허위 투자 광고지가 뿌려지면서 시민 문의가 늘어 이달 10일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사지구 등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된 4개 지역 주민들은 21일 오후 2시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개발 반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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