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도체 빅딜,총수들 나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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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회사의 합병은 남녀간의 결혼보다 더 미묘하고 어려울 수도 있다고 본다.

더구나 현대와 LG 두 그룹의 반도체회사 합병에는 경영권 문제가 결부돼 있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된다.

지금 이 두 그룹간의 반도체 빅딜 교착상태는 나라의 경제적.정치적 난관이 돼 있다.

자칫 지역감정 문제로까지 비화할 우려마저 있다.

상 (商) 거래는 본질적으로 당위성보다 당사자의 교섭이 더 중요하다.

빅딜도 마찬가지다.

제3자의 심사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거래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쌍방의 흥정으로 시작해 흥정으로 끝나야 정상적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평가기관인 ADL사가 두 회사에 관한 평가 결과를 공표하도록 절차를 만든 건 적절치 못했다.

이 평가자료는 공표 목적이 아니라 쌍방이 빅딜 상담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데 중요한 기본 참고자료로 쓰도록 돼 있어야 했다.이러한 객관적 자료는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평가자료에 의해 빅딜이 강제되도록 돼 있어서는 곤란하다.

이 거래의 관련자들은 만일 이 자료에 어느 쪽이건 승복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면 재심하도록 절차를 준비했어야 옳았다.

지금이라도 때가 늦은 것은 아니다.

LG측의 불복에 대해 ADL은 충분하게 의혹을 풀어 줘야 한다.

그 편이 법원제소로 가는 것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현대측도 여기에 협조해야 한다.

지금 이 빅딜의 긍정적 타결을 위해 전경련이 중재에 나선 것은 옳은 방향이다.

전경련이 할 일은 올바른 중매꾼 노릇이다.

지금 이 빅딜은 그 출발이 옳았느냐 여부를 따질 일은 아니다.

만일 합리적으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음으로써 합병이 가능한 것이라면 지금은 이미 이 거래가 성사되는 것이 결렬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봐야 할 단계까지 깊숙하게 도달해 있다.

이를 위해 두 당사자는 물론 채권 금융기관과 정부도 차분하게 흥분을 가라앉히고 교섭시한을 다소 늘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내의 한벌 사고 파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쯤 되면 며칠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고 흥정도 벌인다.몇 조원에 이르는 자산과 부채, 복잡한 기술과 설비가 걸려 있는 사업을 서로 합병해 경영권을 상대방에 넘기는데 조건과 평가를 금방 합의해 내라는 것은 무리다.

그것은 바늘 허리에 실 매어 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쌍방의 총수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본다.

현대측은 ADL의 평가에서 유리한 입장을 얻었다고 해서 겸손한 자세를 저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신의성실로써 교섭에 임해야 한다.

줄 것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 쪽도 상거래의 결렬에는 똑같은 책임이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아는 일이다.

값과 조건만 맞으면 성사되지 못할 상거래는 거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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