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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폭력, 인성 휩쓸어버리는 ‘영혼의 쓰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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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검은 빛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364쪽
1만2000원

“만화를 많이 본 덕분에 소설가가 됐다”는 올해 서른 세 살의 ‘엉뚱한’ 작가 미우라 시온.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일본 최고 권위의 대중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았는지, 왜 한국에서는 그녀를 ‘일본문학 8대 작가’로 꼽는지 등 궁금증에 답하는 듯한 소설이다. 우선 노골적인 성애 묘사, 살인·아동 학대 등 폭력 장면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런 수위 높은 장면은 인물의 성격과 소설 주제를 드러내는 데 요긴하게 동원된다. 때문에 소설은 남는 거 없는 심심풀이가 아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소설에 견줘 나 자신,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소설 초반 배경 공간은 주말에는 낚시꾼, 여름철에는 해수욕객들이 즐겨 찾는 일본 도쿄 인근의 작은 섬, 미하마(美浜)다. 이름처럼 맑은 물, 화려한 동백꽃이 피는 아름다운 섬이지만 한꺼풀 벗기면 그렇지만도 않다. 윤리의식이 실종된 절해고도의 원시 부락처럼 타락한 인간들이 득시글거린다. 열 살의 사내 아이 다스쿠. 엄마가 도망간 후 성격 거친 아버지의 혹독한 폭력에 시달리다 보니 비굴하고 뻔뻔스러워져 아이다운 귀여움은 찾아볼 수 없다. 거짓말처럼 섬에 쓰나미가 들이닥쳐 주민들이 몰살당하자 자신의 아버지도 죽었을 걸로 여기고 기뻐 날뛴다. 네 살 많은 노부유키. 한 때 다스쿠가 가여워 듬직한 동네 형 노릇을 했지만 언제부턴가 짜증스러워져 위악적으로 대한다. 성인이 되서도 계속되는 둘의 애증 어린 대립은 마지막까지 소설을 끌고 가는 중심축이다.

소설 전편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설정 중 하나는 노부유키가 연인 관계였던 동갑내기 미카를 범한 낚시꾼을 살해하는 대목이다. 강물에 배 지나간 흔적이 남지 않는 것처럼, 수 백 명이 쓰나미로 몰살당한 판에 살인사건 하나쯤은 쉽게 묻혀 버린다.

결국 소설의 주제는 ‘자연 재해든 인간에 의한 것이든 끔찍한 폭력을 경험한 인간의 행동은 어떻게 달라지나’다. 당신의 일상은 폭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혹시 폭력에 가담한 적은 없나. 소설은 묻는 듯하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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