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반도체 통합 싸고 갈등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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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반도체 빅딜을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LG측이 현대전자를 '적합한 통합법인 경영주체'로 선정한 아서 디 리틀 (ADL)사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선언했는가 하면, 정부가 '전경련이 발벗고 나서 해결하라'고 주문하자 전경련이 발끈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특히 LG측이 ADL의 평가 결과의 신뢰성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제기한 가운데 컨설팅 업계 일각에서도 '다소 무리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 정부 입장과 전경련 반응 =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27일 "반도체를 구조조정 업종에 포함시킨 것은 물론 통합법인의 지분 및 평가기관의 선정에 정부는 일체 관여하지 않았으며 재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면서 "세계적 평가기관의 실사 결과를 지금 와서 부정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이 꼬이게 된데 대해 김우중(金宇中) 회장이나 손병두(孫炳斗) 부회장이 책임을 느끼고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李위원장은 또 "28일 주요채권단 회의가 예정대로 열릴 것이며 여기서 귀책사유가 있는 기업을 가리고 금융제재조치를 결정, 실천에 옮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고위관계자는 "정부가 연말까지 시한도 정하고 여신중단 등 구체적인 제재방법까지 명시하며 반도체 빅딜을 주도해오다 제대로 추진이 안되니까 전경련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 관계자는 "전경련이 다시 중재에 나서더라도 재실사를 위한 컨설팅업체 선정은 불가능하다"고 못박고 "설사 하더라도 현대.LG 양사의 의견을 절충, 통합을 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확산되는 보고서의 신뢰.공정성 시비 = LG측은 ADL이 평가한 15항목을 자체분석한 결과 오히려 LG가 재무건전성.신공정기술수준.연구개발 전문인력 등 10항목에서 앞서고 나머지는 동등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기술개발 분야에서 LG는 웨이퍼당 반도체 생산개수에서 현대를 앞서고 (4세대의 경우 LG=4백35개, 현대 = 3백94개) ▶마케팅측면에서도 비메모리비중이 LG는 12%인데 비해 현대는 1%이하에 그치는 등 LG가 절대 앞선다는 것.

구본무 (具本茂) LG회장도 일본 출장을 마치고 이날 귀국하면서 "ADL보고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일부 컨설팅 업계 전문가들도 있다. 외국계 컨설팅업체인 C사 관계자는 "반도체 빅딜의 효과에 대한 의견조차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상태서 시간에 쫓기듯 서둘러 평가가 이뤄진 듯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최대 논란거리인 심사 자료에 대해서도 A사 관계자는 "유수의 컨설팅업체가 자의적인 해석을 남발하거나 편파적인 평가를 내릴 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이해당사자가 협조하지 않는 가운데 입수된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왜곡됐다면 결과가 호도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급한 결론' 논란에 대해 ADL은 '8주간 심사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다' 고 주장하는 반면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와 LG 양사가 20조원이 넘는 방대한 규모의 회사를 공정하게 평가하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시간'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ADL의 정태수(鄭泰秀) 한국지사장은 "컨설팅업체로서 이번 평가에 대한 확신은 변함이 없다"며 "세계 유수의 다른 업체가 재심사한다 해도 우리 회사와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시래. 김종윤. 표재용.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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