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수준 갈수록 퇴보'탤런트 박근형씨 비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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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사랑과 성공' '애드버킷'에 출연중인 중견 탤런트 박근형 (58)씨. 59년 연극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 로 시작한 연기생활이 40년이다.

MBC 새해 미니시리즈 '흐르는 것이 세월뿐이랴' 의 촬영현장인 월북 소설가 이태준 생가 (서울성북동 소재)에서 만난 그는 우리 드라마 풍토 전반에 대해 심각한 우려의 뜻을 전했다.

"우리 방송이 참 많이 변질됐어요.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큰일입니다." 우선 시청률에 따라 늘리고 줄이는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해와 올해, 제가 출연했던 작품중 중도에 막을 내린 게 네 편이에요. 드라마란 게 해야할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냥 끝내버립니다. 저조한 시청률로 인한 방송사의 고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죠." 옛날엔 달랐다고 한다.

"70년대에도 인기가 없으면 서둘러 종영하는 일이 있긴 했어요. 하지만 줄거리를 수정해서 적어도 시청자들에게 수긍이 갈 정도까지는 해주고 마무리했습니다. 한데 요즘은 막무가내예요. 아주 간단한가봐요." 깊이가 없는 드라마 내용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드라마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막대한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요즘엔 감각적인 내용들만 나열하면서 시청자들의 기호에 따라 이리저리 바꾸곤 하죠. 전문성과 작품성을 기대할 수가 없어요."

그는 몇달전 시청률 최상위권의 드라마 출연 도중 자청해 하차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이건 도무지 일관성이 없는 거예요. 그런 엉터리 같은 작품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빨리 빼달라고 했죠. 그렇지 않으면 출연 거부하겠다고. 결국 10회만에 죽는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이같은 풍조의 원인으로 그는 전문가정신 부재와 상업주의의 만연을 꼽았다. "요즘 창피할 정도인 일본 표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방송에서 작가 정신이 실종하고 있습니다. 70년대엔 고민을 거듭하며 만드는 좋은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후퇴한 겁니다."

우리 드라마를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선 사전전작제 (방영전 모든 분량을 제작하는 것) 와 외주제작 확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리 만들어야 기획 단계부터 철저하게 준비합니다. 대충 시작한 뒤 쫓기듯 만들어가는 시스템에선 작품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외주제작이 시급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독립 프로덕션에서 만들게 되면 자연히 방송사의 심사를 거치게 되니까 탄탄한 기획이라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자체제작의 경우 잘못 만들어도 서둘러 끝내면 그만이지만, 독립 프로덕션은 한번 망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치열한 자세로 일하는 거죠."

우리의 생활수준이 몇십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한탄이 사회에서 나오고 있지만, 드라마는 차라리 20~30년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씁쓸한 얘기로 그는 말을 맺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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