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재판 방청객 소란으로 차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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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올 1월 발생한 서울 용산 재개발지구 농성자 사망사건과 관련해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 등 혐의로 기소된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 이충연(36)씨 등 9명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재판이 시작되자 변호인 측은 “검찰이 일부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이 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기록이 공개될 때까지 재판은 중지돼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정의롭지 못한 재판에 협조하는 결과가 되므로 변론을 거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인 형사합의27부 한양석 부장판사는 변호인단에게 퇴정할 것을 요구했다. 법정에는 재판을 대신 진행하기 위해 국선변호인이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이때 방청석의 대부분을 메운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 100여 명 가운데 일부가 일어나 “재판이 개판이구먼. 이게 재판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일부는 재판부와 검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법정 경위가 재빨리 이들을 법정 밖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법정 문 밖에서 계속 소란을 피웠다.

한 부장판사는 휴정을 선포하고 30여 분 뒤에 법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법정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방청객들은 일제히 “(수사기록) 3000쪽은 내놓는 겁니까. 이런 재판 하지 마십시오”라고 다시 고함을 질렀다. 재판부가 입장할 때 통상의 절차에 따라 경위가 “모두 일어나십시오”라고 했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 부장판사는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기가 불가능하다”며 “다음 재판은 9월 1일에 하겠다”고 말한 뒤 서둘러 퇴정했다. 방청객들은 법정에 있던 두 명의 검사를 향해 “서민 죽이는 검사는 각성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에게 “이번엔 (재판이 재개된 후) 첫 재판이라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다음 재판 때는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면 감치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4월 열린 첫 재판 때 검찰이 수사기록 1만 쪽 가운데 3000쪽의 공개를 거부하자 변호인단은 “검찰이 불리한 증거를 숨기려고 한다”며 전면 공개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검찰에 수사기록 공개를 명령했으나 검찰이 계속 거부하자 “형사소송법상 더 이상 취할 수단이 없다”며 재판을 계속 진행하려고 했다. 이에 변호인단은 재판부 기피신청을 냈다. 그러나 고법과 대법원은 변호인단의 주장이 이유 없다며 기각결정을 내려 이날 재판이 다시 열린 것이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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