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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투자유치-외국인의 場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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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경제의 회생 (回生) 을 가속화하기 위해선 외국인 직접투자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선 외국자본이 들어와 우리의 외환사정을 호전시켜줄 뿐만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도 이전시키며 새로운 경영기법.마케팅전략 등이 도입될 수 있다.

이것이 전반적 경제성장에 직결될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외국인의 대한 (對韓) 투자가 늘고 있음이 통계에 잡힌다.

11월 한달 동안 들어온 것을 보면 허가기준으로 14억달러에 달하고 있는데 아직 흡족한 수준은 아니나 증가추세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를 분석해 보면 과거의 외국인 직접투자와 현저히 다른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투자액수나 점유율로 볼 때 유럽과 일본에서 들어오는 경우가 증가추세임에 비해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감소추세라는 점이다.

둘째, 외국인 투자가 중후장대형 (重厚長大型) 제조업분야보다 기술집약형이고 서비스 집중적인 산업분야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기존 합작업체의 소유주식을 인수하는 형식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주로 중견기업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상위권 대기업군에서는 별로 활발치 못하다.

우리는 이상의 추세를 중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왜 미국쪽으로부터의 직접투자가 상대적으로 저조한가를 분석해야만 한다.

지난 12월 7일부터 약 1주일 동안 우리나라 국제대학원 원장들로 구성된 투자유치반이 미국의 6대 주요도시를 순방하면서 업계.학계.언론계.관계 주요 인사들과 세미나 및 간담회를 가졌는데 여기서 발견한 몇가지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들이다.

미국인들은 아직도 우리 경제가 정부와 대기업이 공동운영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비록 현정부가 강력한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선도하고는 있으나 워낙 30여년 동안 뿌리깊게 작용해 온 재벌의 영향력이 불과 수개월내에 약화될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우리의 노동부문에 대해 신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새 노동법에 의해 정리해고제.변형근로제.파견근로제 등이 도입됐음을 알면서도 이 제도가 순조롭게 운영되겠는가 하는 의문을 많이 갖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적은 우리의 각종 제도적 인프라가 아직도 미비하다는 것이다.

매물로 나온 기업에 대해 정확한 자산평가 및 사업 장래성 평가가 안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담당한 전문기관이 제대로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고 재산보험회사 (title insurance) 도 없어 외국인이 매입한 고정자산의 가치가 부당하게 평가절하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인프라가 선진형으로 마련돼야 국가신인도도 올라갈 것이며 그래야만 미국으로부터의 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번 포드가 기아자동차 입찰 참여를 고려할 당시 입찰가보다 이러한 사후 제도적 안정성이 결여돼 있어 결국 입찰 참여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인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노력해 개선해가고 있는 분야까지도 반신반의하는 것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 고 해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대한 투자에서 지금이 과연 적기인지 판단이 안 선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미국기업들은 유럽이나 일본에 대한진출의 기회를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대미 투자유치 전략을 짜는 데 있어 우리는 앞에서 지적한 세가지 문제점을 반드시 해소해야 할 것이다.

대재벌정책.노동정책, 그리고 각종 선진형 제도 구축 등은 확실하게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투자유치의 성패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국가 신인도 회복도 물론 이에 직결돼 있다.

또 한가지 방법상의 문제로서 투자유치도 '간청' 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마케팅'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즉 인위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지정학적 특성과 우리의 경제적 메리트를 엮어 외국인들이 샘을 내면서 경쟁적으로 진입토록 국내에 투자의 장 (場) 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코자 하는 산업분야가 미국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꽤 많다고 본다.

예를 들면 반도체.텔레콤.컴퓨터 소프트웨어.생명공학 등에서 미국의 선진기술과 우리의 우수인력.제품화 능력이 잘 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실질적이고 성사 가능한 투자유치 접근방법을 전문가 차원에서 개발해 낼 것을 제안하며 정부는 이러한 연구를 꾸준히 지원해야 할 것이다.

유장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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