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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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그건 거짓말인 줄 알어. " "거짓말 아니란 걸 확실하게 해 두기 위해서 한마디 더 해야겠어. 졸업하고 군대 갈 때까지 우리 일행 따라다니며 장사일 배우겠다는 결심하고 며칠 동안 아버지 몰아붙였지?" "형이 아버지한테 전화 했었어?" "전화는 임마. 벌써 니하고 약속하고 받지도 않는 전환데, 무슨 재주로 통화를 해. 점쟁이집 맏아들이라도 그건 못한다.

"

"형. 나 소주 딱 한 잔만 마시고 싶어. " "제 손으로 시켜 마시지 않고 한 잔 사달라고 조르는 걸 보니까 니가 생판 맹탕은 아니구나. 그래 딱 한 잔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형식에게 태호는 소주 한 잔을 안다미가 되도록 가득 부어 주었다.

그러나 형식은 대뜸 홀짜락하지 않고 소주잔을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매만지면서 뜸을 들였다.

무슨 말부터 할까. 속으로는 말을 고르고 있는 중일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소주는 마시지 않고 속내를 기분 좋게 털어놓았다.

"형, 나 대학 갈 마음 없어. 가고 싶어도 실력이 형편 없어서 애초부터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모의수능시험도 쳐 보지 않았던 것 같애. 2학기 말부터는 오후에 조퇴해서 운전교습소에 다녔어. 열흘 후에 일종 보통시험 있어.난 어부가 되긴 싫은가 봐. 돈은 벌든 못 벌든 장사꾼이 되고 싶어. 그래서 아버지께 졸라서 나 혼자 와 본거야. "

"너네 아버지 덩치 큰 니한테 휘말려서 매질은 못하고 한동안 술깨나 퍼마셨겠구나. " "아버지 나 때문에는 술 한 방울도 안 마셨어. 요사이 폭 빠진 데가 있는 것 같거든. " "차마담?" 형식은 고개만 끄덕였다.

어머니도 없이 아버지와 단 두 사람의 단출한 식구가 살아가는 가장인데도 갖출 것은 골고루 갖추고 갈등구조도 어김없이 배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태호도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너 장돌뱅이 신세란 게 얼마나 고단한지 알기나 해?" "알어. 서가식 동가식하며 노숙생활 한다는 거. " "동가식 서가숙이다 임마. 한 가지를 알아도 똑바로 알아. 노숙생활이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여름이면 강가 갈대밭 머리에서 불어오는 바람 쐬며 잠들고,가을이면 별빛 찬란한 밤하늘에 날으는 기러기떼를 쳐다보며 잠드는 고상한 생활로 알고 있지? 나무 그늘에 용달차 세워 두고 낮잠 한번 늘어지게 자다가 내키면 또 달려가서 싸구려나 부르며 이익을 챙기는 수월한 뜨내기 생활이 바로 행상꾼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형, 나 그런 생각 없어. 아버지가 그러데, 뼈를 깎는 생활이라고. 나도 각오하는데 힘들었단 말야. 형처럼 똑똑한 사람도 대학 못가서 장사꾼이 되었잖아. 자신이 없지만 입대할 때까지 형 따라다니며 배운다면, 나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애. " "넌 안돼 임마. 아버지 집 비운 사이에 계집애들 꼬셔서 해변으로 나가 조개줍기나 하던 놈이 하루 아침에 행상꾼이 가당키나 해. 자취생활 오래 해서 밥은 잘 짓겠다. "

시종 시까스르기만 하는 태호가 드디어 못 마땅했던 모양이었다.

형식이는 드디어 만지작거리기만 하던 소주잔을 단숨에 털어넣었다.

마시는 꼴을 보자 하니 집에 혼자 있을 때 또래들끼리 모여 소줏장난도 해 본 솜씨가 분명했다.

"형 말할 때마다 나보고 임마 점마 하지 말았으면 좋을 것 같애. " "짜식. 쓸개는 신품으로 갖고 다닌다 이거지? 니 나한테 한번 맞아 볼래. " "형이 때린다면 맞아 볼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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