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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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6장 두 행상

주문진의 변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한씨네는 변씨로부터 뱃자반 매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통기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간고등어 중에서 상품 (上品) 을 매입해 탁송하려면, 삼사일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잠시 망설였다.

변씨가 손수 상주로 싣고 왔던 간고등어는 이미 재고가 바닥나고 말았다. 다시 탁송되어 오기를 기다리며 사흘 동안 안동에서 빈둥거리며 지체하는 동안 오금이 근질거리고 좀도 쑤셨다.

혈기방장한 난전꾼 세 사람이 할 일 없이 사흘을 빈둥거리고 났더니, 어느덧 게으름에 이골나서 나중에는 세수조차 하기 싫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겨냥하고 떠났던 곳이 청도였다.

물론 청도반시의 시세를 탐문하자는 속셈에서였다. 청도반시의 성가는 인근지역에서 상표를 도용해 말썽이 될 만큼 유명한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 전 청도군내에 있는 감 재배 농민들이 밀양감에 청도반시의 상표를 붙여 팔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관에 대책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겉모양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청도감은 씨가 없으나 밀양에서 생산되는 감은 씨가 있었다. 그러나 먹어보지 않는 이상 씨가 있고 없고를 분별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불거진 원산지 세력 다툼이기도 하였다.

여느 군청소재지는 2일과 7일에 장이 섰다. 그러나 청도만은 영덕과 청송이나 고령과 같이 4일과 9일에 장이 섰다. 그런 고장은 대개 상설시장이 번창하여 구태여 장날을 따로 두어 번거로움을 겪을 까닭이 없거나, 교통 사정으로 상권을 인근의 면소재지로 빼앗긴 처지에 있는 고장들이었다.

청도 역시 상설시장이 번창한 곳이었다. 그러나 한씨네가 찾아간 곳은 청도 시가지의 상설시장 아닌 감 재배 농가들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농가를 설치며 차떼기가 될 만한 수량을 구입하려 하였지만, 이미 농협이나 도매상들에게 입도선매하였거나 계약출하가 된 것이어서 뜨내기 상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라곤 없었다.

그러나 허행을 할 수는 없는 처지였으므로 내친 김에 밀양의 상동면이란 고장을 찾아갔다. 상동면의 오백여 농가는 감 재배로 연간 20억이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는 고장이었다.

그곳의 도매상을 찾아가 4톤 트럭의 적재함을 채울 수 있는 수량을 구입한 뒤 주문진에 연락을 하였다. 변씨가 안동까지만 한번 더 내려와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간고등어 30상자를 싣고 안동으로 달려온 사람은 놀랍게도 변씨 아닌 변형식이었다. 졸업을 앞두고 있는 외아들을 내려보낸 엉뚱한 일거리를 만든 것이었다.

형식에게 감 실은 화물차를 송두리째 떠맡겨야 할 입장에 있었다. 발상은 괴짜다 싶긴 하였지만, 감을 싣고 갈 화물차의 여정이 장난이 아닌 것은 변씨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텐데 왜 이런 일을 벌여 놓고 전화조차 받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전화도 응당 걸려올 줄 짐작하고 받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난감하기 그지 없었으나 형식이 앞에서 변씨의 처사를 노골적으로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가 가출하고 아버지 또한 집을 자주 비우고 나다니는 와중에서 형식이 얻은 것은 눈치뿐이었다.

형식이는 어처구니없어 선웃음만 치는 철규의 내심을 벌써 알아채고 머쓱하고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형식이를 내려보낸 변씨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든 그 속내만 믿고 자칫 장사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태호가 형식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섰다. 거리는 벌써 저녁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방금 휘장을 친 포장마차로 데리고 들어가 국수부터 사먹였다.

일행 중에서 세대차가 가장 적은 사이였기 때문에 철규가 나서지 않고 태호에게 내막을 알아보도록 부탁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태호는 이미 형식의 속내를 얼추 꿰고 있는 듯했다.

"니가 안동으로 오겠다고 아버지께 졸랐지?" "형, 그거 어떻게 알았어?" "야 임마, 내가 점쟁이집 맏아들 출신이란 거 모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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