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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교육부의 발상 전환을 촉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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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해 10월 교육인적자원부가 2008학년도 입시 개혁안을 발표할 때부터 이미 대학들은 일관되고 분명한 목소리로 소위 내신 위주 전형이 갖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능을 등급화하면 논술과 면접 등 대학별 고사를 강화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해 왔다.

이때부터 교육부는 대학과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는커녕 내신 위주 전형과 3불 정책 준수만을 반복할 뿐 무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그 결과 학생들은 과도한 내신 경쟁에 비명을 지르고 있고, 서울대가 논술 강화안을 발표하자 학생들은 또 다시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부가 내신 위주 전형이나 본고사 같은 용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을 가진 교육정책의 방향과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라도 교육부는 대학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을 잘 살펴보면 결코 본고사 부활이 아니다. 교육부나 국민이 우려하는 본고사는 전체 학생을 국.영.수 중심의 단답형 문제로 선발하는 시험일 텐데 서울대안은 전혀 다르다. 서울대 입시안은 상당수의 학생을 내신 위주의 지역 균형 선발과 특기 중심의 특기자 전형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생을 정시모집에서 대학별 고사 위주로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별 고사도 과거의 국.영.수 위주의 단답형 문제가 아니라 심층적인 이해와 지식을 평가하는 논술형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안은 내신 위주 전형의 큰 틀 안에서 학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기회를 확대시키는, 고심 끝에 나온 합리적 안이다.

정시모집에서의 논술 강화안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사교육비 부담을 조장하고 공교육을 심각하게 파행시킬 것이라는 우려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현재보다 공교육이 더 나빠질 수 있겠으며, 또 사교육 부담이 현재보다 더 커질 수 있겠는가. 실력있는 학생을 확실하게 변별할 수 있는 시험이 도입되고, 학원 과외로 급조되지 않은 자기학습 능력을 가진 학생을 선별할 수 있게 된다면 사교육 부담은 오히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효과없는 입시규제를 중단하고 대학에 학생 선발권을 돌려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교육정책의 요체는 형평성과 수월성을 균형있게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생각하는 내신 위주 전형은 수월성 교육을 파행화할 것이 분명하다. 당장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가 설 자리를 잃게 될 뿐 아니라 능력있는 학생을 역차별하는, 실로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수한 학생을 차별하는 이런 잘못된 제도 때문에 수월성 교육이 붕괴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대학에는 팽배해 있다. 대학별 고사의 비중 강화는 대학이 취할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자구책인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문제의 근원적 해결책은 평준화 정책을 근본적으로 보완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90%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평준화 틀을 유지하되 상위 10%의 학생은 철저히 실력 위주로 경쟁적 환경에서 선발하고 교육하도록 모든 규제를 풀 것을 제안한다.

교육부는 90% 학생을 위한 공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진력하고, 상위 10%를 위한 수월성 교육은 민간의 창의성과 재원을 함께 활용한다면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또한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육성하려면 수월성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렇게 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러한 정책을 장기적인 비전과 청사진을 갖고 꾸준히 추진해 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같은 소국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할 것이다.

김완진 서울대 교수.전 입학관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