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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모임결성 잇따라…혈우재단등 10여개 활동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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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희귀질환자들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비슷한 처지의 환자끼리 모여 동병상련의 기회를 갖고 나아가 권익증진을 위한 압력단체를 결성하기 위해서다.

대표적 사례는 최근 요붕증(尿崩症) 환자 모임을 발족한 郭모씨(35). 91년 일본 유학시절 뇌수술 후유증으로 요붕증이 생긴 郭씨는 소변을 농축시키는 뇌하수체 호르몬의 분비저하로 30분마다 화장실을 가야하고 극심한 갈증을 겪어야 했다.

요붕증은 수백만 명에 한 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 따라서 특효약인 데스모프레신이 수입되지 않아 암거래상을 통해 밀수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95년 국내시판이 허용됐으나 이번엔 알약의 경우 보험적용이 안돼 매달 수십만 원을 내야했다.그나마 환자가 적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취급하는 병원이 없어 약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

올해 초 郭씨는 청와대.보건복지부.의보연합회에 민원을 제기, 3개월 후 데스모프레신 알약은 의보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제 매달 6~7만원의 비용으로 치료가 가능해진 셈이다. 郭씨는 이를 계기로 아예 환자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10여 명의 요붕증 환자들이 참여 중.

가장 많은 회원이 있는 희귀질환자 모임은 96년 설립된 한국근육병재단.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문재호(文在豪) 교수를 주축으로 결성된 이 재단엔 현재 7백50명의 근육병 환자가 참가한 상태. 모금운동을 통해 사회 각계로부터 5억원의 재단기금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문세.박상원씨 등 유명 연예인과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환자교육과 간호를 돕고 있다. 근육병으로 인한 사지마비가 장애인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재단이 얻어낸 성과.

이 밖에도 전신성홍반성낭창 환자의 모임인 루이사, 혈우병 환자들 모임인 한국혈우재단 등 10여 개의 희귀질환 모임이 결성되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희귀질환자들의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환자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생각 때문. 친목도모와 질병치료관련 정보교환뿐 아니라 희귀질환자를 위한 사회적 배려와 제도마련에도 적극 관여하겠다는 것.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희귀질환에 대한 의료보험의 재정지원이다.

郭씨는 "현재 혈우병 치료와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혈액투석치료에 대해서만 본인부담금 비율이 20%"라며 "요붕증도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고통이 극심해 현재 50%로 되어 있는 본인부담금 비율을 2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금감면에 대한 주장도 있다. 文교수는 "근육병 환자의 경우 호흡곤란 치료를 위해 7백만~1천만원이나 되는 고가의 호흡보조장치가 필요하다"며 "이들 의료기구에 대한 세금감면혜택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단지 환자의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희귀질환자만 예외적으로 의보혜택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다른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과 비교해 형평성을 잃은 처사이므로 반대한다는 입장. 보건복지부 보험관리과 관계자는 "최근 희귀질환자 단체의 민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으나 의료보험료를 낸 다수 피보험자의 동의없이 이들에 대해서만 특혜를 줄 순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회적 소외계층인 희귀질환자에 대해 형평성만을 내세워 국가에서 적절한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겠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게 희귀질환자들의 입장. 사실 희귀질환을 따로 지정해 제약회사의 의약품 수급과 병.의원의 환자관리를 감독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실정은 희귀질환 분류.환자 수 등 기본적 통계자료조차 없다.

그나마 적은 지원도 일정한 원칙이나 체계 없이 이뤄지고 있다. 희귀질환에 대한 재정지원에 인색하다고 평이 난 복지부가 선천성 대사질환으로 평생 효소치료를 받아야하는 고셔병 환자 13명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본인부담금 비율을 20%로 낮춰줄 것을 검토 중이기 때문.

전문가들은 "국가에서 희귀질환을 따로 지정해 일정한 관리지침을 마련해야 하며 이들에 대해선 사회복지차원에서 국고에서 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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