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올 경제전망 너무너무 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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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 12월 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 (IMF)과의 자금지원 1차 협상을 끝낸 뒤 잔뜩 생색을 냈다. IMF가 98년에 2.5% 경제성장을 예상했으나 정부가 끝내 3% 성장률을 관철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98년 성장률은 협상의 막판 쟁점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전망'을 놓고 소모전을 펼친 셈이다.

올해 성장률은 플러스 성장은 고사하고, 사상 최저수준인 마이너스 6% 안팎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나 IMF뿐 아니라 각 연구기관들이 올 연초에 내놓은 경제전망은 한참 빗나갔다. 웬만큼 맞은 경기지표는 원화환율과 소비자물가상승률 정도다.

정부나 연구기관들은 올해 원화환율을 대체로 상반기에 높다가 하반기에 안정을 찾으면서 연평균 1천3백~1천4백원 정도로 예상했으며, 실제로 외환사정이 나아지면서 비슷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나머지 전망들은 그야말로 전망으로 끝났다.

실업률은 예상을 뛰어넘은 대표적 지표다. 대부분 4~5%대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7%를 넘었다. 정부나 연구기관들은 IMF체제로 실업률이 올라갈 것으로는 예상했으나, 3%만 돼도 고실업이었던 과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감히 7%를 전망하지는 못했다.

이와 달리 당초 비관적으로 보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지는 쪽'으로 계속 고쳐나간 것도 있다. 경상수지와 금리가 여기에 속한다. 경상수지는 올 연초에 대부분 '소폭 적자나 소폭 흑자'를 예상했었다.

그러나 원화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회복과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수출이 늘고, 내수 및 투자 감소로 수입이 줄면서 실제로는 경상수지 흑자가 4백억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금리는 더 극적이다. 올 연초 한때 연리 30~40%까지 치솟던 콜금리가 사상 최저수준인 연6%대까지 떨어졌다. 보수적이라는 정부조차 올해 평균금리를 연18~20%의 고금리로 내다봤을 정도다.

올 연초 한국능률협회가 12개 민간 경제연구소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2명은 소비자물가 상승, 1명은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걱정된다고 답해 예측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비자물가는 올 한햇동안 디플레이션 (자산가치와 물가가 하락하면서 찾아오는 경기침체)이 우려될 정도로 안정세를 유지했다.

자딘 플레밍 증권 스티브 마빈 이사의 보고서도 번지수를 잘못 찾은 대표적 사례다. 마빈 이사는 지난 6월 "98년 가을에 한국 경제가 죽음의 고통을 겪고, 10여개 은행이 한꺼번에 도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했으나 실제로는 '공수표'가 됐다.

물론 올해 외환위기와 구조조정 등 격변의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경제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전망에 관한 한 가장 권위있다는 한국개발연구원 (KDI)과 한국은행은 전망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판단, 올 연초에 전망치를 아예 내놓지 않았었다.

KDI는 올 봄에 들어서야 다시 분기별로 경제전망을 발표하기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발표때마다 고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 3분기 경제전망때는 낙관적 시나리오와 비관적 시나리오의 두 가지로 발표해 '양다리'를 걸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고현곤.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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