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정국 어디로]“밀리면 끝장”막가는 여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예산안 처리 때부터 삐끗거리던 여야가 천용택 (千容宅)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 문제로 완전히 등을 돌렸다.

총무간 막후채널도 더이상 가동되지 않고 있다.

이젠 각자 갈길로 가겠다는 정면대결식 목소리만 나오고 있다.

이회성 (李會晟) 씨 구속 등으로 수세에 몰리던 한나라당은 호재 (好材) 를 만났다는 듯 총공세를 펴고 있으나 여당은 "한번 밀리면 끝까지 밀린다" 는 생각에 완강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장 1만1천개 중 5천개의 규제를 풀겠다는 정부 제출 규제개혁 법안이 공중에 떠버리게 됐다.

상임위 법안심사엔 응하겠으나 이를 처리키 위한 본회의 심의엔 일절 협조하지 않겠다는 게 야당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한.일 어업협정 비준안.교원정년 단축 및 교원노조 설립 법안 등 주요 안건의 단독처리 방침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 경우 야당은 실력저지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나흘 남은 막판 정기국회는 이제 작동불능 상태에 접어든 셈이다.

야당은 18일 폐회 직후 임시국회를 또 한번 소집할 예정이고 법안처리 지연에 압박을 느끼는 여당도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체포동의안이 상정된 여야 의원 5명의 '생명' 은 다시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당국 핵심 관계자는 "임시국회로 체포가 계속 지연될 경우 해당 의원 전원을 불구속 기소할 방침" 이라고 밝혀 정치권과 사정당국의 긴장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헝클어진 연말 정국을 강타할 메가톤급 폭탄은 역시 세풍 (稅風) 문제와 관련,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에 대한 검찰 조사 여부와 방식. 박상천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이날 법사위에 나와 "예우는 예우고 수사는 수사" 라는 기본입장을 천명해 야당측을 자극했다.

이렇게 되면 경제청문회도 여권이 의도한 대로 내년 1월 8일 착수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결국 정치권이 극도의 혼미 속을 헤매는 동안 여권 핵심의 정계개편 구상이 가시화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서도 여전히 안정된 정치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여권 일각에선 또 한번의 '정치권 충격' 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한동 (李漢東) 전 부총재.서청원 (徐淸源) 전 사무총장 등 비주류와 영남권 의원들이 '반 (反) 이회창' 의 기치 아래 합종연횡 (合縱連衡) 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연말연초 정국은 강경투쟁으로 당내 지도력을 구축하려는 이회창 총재와 정치권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는 여권 핵심의 의중이 맞부닥치며 요동칠 전망이다.

전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