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자연음 컴퓨터 재생… 佛작곡가 제라르 그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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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달 11일 52세의 나이로 타계한 제라르 그리제는 80년대 프랑스 현대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인간의 귀로 감지해 낼 수 없는 미분음 상태의 자연 배음 (倍音) 을 컴퓨터로 재생시켜 '스펙트럼 이동' 을 응용한 작곡법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배음은 그 분포도로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의 음색을 결정하는데 피아노 건반, 즉 평균율로는 낼 수 없는 소리다.

마치 빛을 스펙트럼으로 분해하듯 여러 겹의 미세한 진동으로 분리돼 '음악의 팔레트' 로 사용된다.

그리제의 작곡법은 80년대 이후 세계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자신은 특정한 도그마와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파리음악원과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메시앙.슈톡하우젠.리게티.크세나키스 등을 사사했다.

72년 로마 대상을 수상한 그는 프랑스 국비장학생으로 베네치아 빌라 메디치에서 만난 동료 작곡가들과 '순회그룹' 을 결성, 60년대 현대음악의 기수 피에르 불레즈가 이끌던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에 버금가는 활동을 전개했다.

피에르 불레즈가 퐁피두센터 내에 만든 음향음악연구소 (IRCAM)가 배출해낸 첫 졸업생인 그는 86년부터 파리음악원 교수로 있으면서 후진을 양성해 왔다.

그의 지론은 작곡가는 소리 재료 자체 뿐만 아니라 소리가 펼쳐지는 공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주요 작품으로는 인도철학에 영향을 받은, 2개의 악기군을 위한 '물과 돌에 대하여' (72년) 와 76년부터 10년에 걸쳐 발표한 6개의 '음향공간' 연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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