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DJ 빈자리’ 어떻게 채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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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동교동계 측근들. 민주당 한광옥 전 대표, 권노갑 전 고문, 김옥두 전 의원, 한화갑 전 대표, 윤철상 전 의원(왼쪽부터)이 헌화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야당시절부터 김 전 대통령을 보좌해온 비서 출신이다. [연합뉴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서거가 불러올 정국 구도의 변화에 정치권은 술렁이고 있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정국 때 수준의 거센 충격파가 나타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여권의 고위 관계자는 “범국민적 애도 기류가 이어지면서 일단 민주당 지지층 내의 결집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와병으로 서거했고 투병기간(37일)도 길어 그때보다는 파장이 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원택(정치학) 숭실대 교수도 “(서거가) 어느 정도 예상돼온 만큼 국민들은 아쉬움 속에서도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라며 “전체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당의 대주주를 잃은 민주당 내 역학구도엔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DJ의 공백을 메우려는 2세대 정치세력 간에 치열한 수싸움과 이합집산이 전개될 가능성이다. 우선 정세균 대표 등 지도부는 자신들이 ‘포스트 DJ’ 시대 야권의 리더임을 자임하며 ‘민주당 중심의 야권통합’을 추진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비주류는 “당이 기득권을 줄이고 친노·동교동계·정동영 무소속 의원 등을 포용해 외연을 넓혀야 DJ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지역이 변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DJ는 민주당과 호남을 맺어주던 상징적 존재”라며 “그의 사후에도 호남이 현재의 민주당으로 결집할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호남의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거나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당내에서 부각되지 않을 경우 “현 체제론 안 된다”는 비주류의 공격이 격화될 수 있다. 정동영 의원 등 외곽그룹에선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DJ의 서거 하루 전(17일) ‘연내 신당 창당’을 공개 제안한 일부 친노 인사들도 서거 정국이 일단락되면 창당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DJ 서거가 야권에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의 이유다. 김효석(3선·담양-구례-곡성) 의원은 “ 여러 갈래로 나뉜 민주세력들과의 통합이 향후 당의 주된 고민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원택 교수는 “DJ는 단순히 호남 출신이어서가 아니라 남다른 정치역정으로 호남의 한을 풀고 민주화를 이끌 선봉으로 각인돼 호남과 개혁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며 “이제는 이 두 세력을 한꺼번에 장악하는 맹주형 인물이 나오기 힘든 시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DJ의 공백을 차지하려면 시대에 맞는 참신한 가치를 제시하고, 손학규·김근태·정동영 등 외곽의 인물들을 끌어들여 판을 넓혀야 한다는 조언이다.

DJ 서거는 미디어법 처리 이후 끊어졌던 여야 간 대화 복원과 민주당의 국회 복귀에는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여당의 한 당직자는 “DJ 서거를 계기로 화해와 사회통합의 분위기가 조성되면 민주당과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민주당 김부겸(3선·경기 군포) 의원도 “장례가 끝난 뒤 의원들이 또다시 길거리로 나오긴 거북스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찬호·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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