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바예바, 장대높이 충격의 ‘등외 성적’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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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바예바가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선 마지막 시기에서 4m80cm의 바를 넘지 못한 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기록(5m5cm) 보유자이자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이신바예바는 이날 세 차례 시기를 모두 실패해 등외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하며 세계선수권대회 3회 연속 우승의 꿈을 접었다. [베를린 AFP=연합뉴스]

일시적인 부진인가, 종말의 서곡인가.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7·러시아)가 등외로 밀리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신바예바는 18일(한국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2009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단 한 차례도 바를 넘지 못하고 순위 밖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다. 2005년 헬싱키 대회, 2007년 오사카 대회에 이어 3연패를 이루려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신바예바는 그동안 16차례 세계신기록 수립과 함께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두 차례씩 석권하며 단 한 번도 패배를 허용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달 런던 그랑프리에서 6년 만에 패배를 당한 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등외’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 들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열애설과 훈련 부족이 발목 잡았나=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5m5㎝의 세계신기록을 세운 이신바예바는 올해 들어 하향세가 두드러졌다. 지난달 18일 파리 그랑프리에서는 4m65㎝까지 떨어진 데다 일주일 후 런던에서는 로고프스카(폴란드)에게 1위 자리까지 내줬다. 자신의 기록에 훨씬 못 미치는 높이에도 쩔쩔매는 그를 보며 베이징 올림픽 이후 새로운 동기 부여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열애설도 끊이지 않았다. 트레이닝 코치였던 다섯 살 연하 애니톰 토네츠키(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투포환 선수 조르제 발렌지오, 러시아 군인 장교 등과 잇따라 열애설이 불거졌다. 이로 인해 훈련이 부족할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자만이 부른 작전 실패=이런 상황임에도 이신바예바는 자만한 듯하다. 최근 대회에서 좀처럼 4m70㎝를 넘지 못했음에도 4m75㎝를 1차 시기로 삼은 것이 화근이었다. 결승전 1차 시기에서 로고프스카가 무난히 4m75㎝를 넘자 이신바예바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그는 4m75㎝로 정한 1차 시기에서 몸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고 공중으로 도약하기도 전에 떨어졌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마음을 다잡은 그는 4m80㎝로 올려 재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는 배가 바에 걸렸고, 마지막 시기 때는 바를 끌어안고 매트로 떨어졌다.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경기를 마친 뒤 이신바예바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오늘 일어난 일을 나 역시 설명하기가 힘들다. 내가 패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패배를 다시 딛고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럽 언론들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세 차례 시기를 모두 실패하고 선수 생활을 접은 ‘인간새’ 세르게이 붑카(우크라이나)를 떠올리며 이신바예바가 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신바예바가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그를 상대할 적수는 없어 보인다. 아직 5m의 벽을 넘은 경쟁자들이 없는 데다 그의 나이가 힘을 쓸 수 있는 20대 후반이기 때문이다. 답은 그만이 알고 있다.

베를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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