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선언일 훈장받는 이돈명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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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돈명 (李敦明.76) 변호사는 남다른 감회 속에 인권선언 기념일을 맞는다.

이른바 '양심수' 를 양산했던 유신시절과 5공시절, 시국사건의 변론을 도맡다시피 했던 李변호사에게 정부는 이날 기념식장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키로 했다.

"한평생 나라가 주는 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라 처음에는 정중하게 사양할까 생각도 했는데 어쨌든 정부가 뒤늦게나마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정표가 아닐까 해서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 李변호사는 자타가 공인하는 인권변호사 1세대. 시국사건으로는 첫 의뢰인이었던 김지하 (金芝河) 시인의 반공법 위반사건을 비롯, 청계피복노조사건, 박정희 (朴正熙) 대통령 시해사건,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권인숙양 성고문사건, 김근태씨 고문사건….그가 맡았던 사건을 나열하면 그대로 격동의 우리 현대사 연대표가 될 정도다.

고시 3회로 10년간 판사로 재직하다 63년 변호사로 개업, 법정과 사무실만 드나들던 평범한 변호사였던 그가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72년 유신 선포가 계기가 됐다.

"당시 대한변협 이사를 맡고 있을 때였는데 유신 선포 당일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 무너졌는데 변호사란 직업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이 절실했거든요. " 그가 변론을 맡은 의뢰인 중에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76년 명동성당 3.1 구국선언사건의 피고인이었던 金대통령의 변론을 맡아 지금까지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요즘은 인권변호사로 불리는 후배들이 꽤 생겨났지만 당시만 해도 나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황인철 (黃仁喆) 변호사 등 불과 서너명이 그 많은 사건을 다 맡았어요. " 그는 "별로 승소율은 높지 않았으니 변호사 본연의 업무능력으로 보면 낙제감" 이라고 말했다.

88년부터 91년까지 모교인 조선대 총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요즘 고령으로 건강이 썩 좋지 않아 사건은 맡지 않고 덕수합동법무법인에 출근, 후배변호사들의 업무를 거들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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