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계 주도하는 '뉴 누벨바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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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프랑스와 트뤼포의 '4백번의 구타' , 장 뤼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 가 공개된 게 59년. 프랑스 누벨 바그 (뉴 웨이브)가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다.

고다르.트뤼포.에릭 로메르.클로드 샤브롤.알랭 레네.루이 말.자크 리베트.아그네스 바르다.자크 드미 등은 로케이션 촬영과 즉흥성,점프 컷과 핸드 헬드 카메라 (들고 찍기) , 자기반영적인 거리두기 등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를 완전히 새롭고 모던한 형식으로 재탄생 시켰다.

하지만 프랑스의 젊은 감독들은 누벨 바그 선배들과 '결별' 한 지 오래다.

이들은 변화한 환경과 세계상에 맞춰 전에 없던 양식을 계발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근착 뉴욕타임스는 이들의 활동을 '뉴 뉴 웨이브' '넥스트 웨이브' '뉴 웨이브의 재생' 이라고 부르며 자세히 소개했다.

60년대 누벨 바그 주도자들은 파리 출신으로 비평가로 활동하다 감독이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를 중심으로 동질적인 집단을 이루었다.

하지만 '뉴 누벨 바그' 세대는 다소 이질적이다.

한 부류는 아노 데플레생.올리비에 아세이야스, 마츄 아마릭 등으로 파리 출신의 식자층이 주도한다.

도회풍의 분석적인 영화들을 만드는 이들은 등장인물도 대학원생.작가 지망생.교수들을 즐겨 다룬다.

다른 그룹인 에릭 종카.가스파 노에.마츄 카쇼비츠.브뤼노 뒤몽 등은 노동자등 하층 계층의 삶에 주목해 이들의 일상을 음울하고 과격하게 묘사한다.

두 부류가 가진 미학과 관점의 차이도 확연하다.

노에의 '나는 홀로 선다' 는 임산부의 배를 차고 동성애.근친 상간등의 장면이 등장한다.

노에는 자신의 영화를 '카타르시스의 영화' 라고 부른다.

그는 아세이야스나 데플레생 같은 동세대 감독들의 영화는 선택받은 나른한 부르즈와 계층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 때문에 싫다고 말한다.

그는 차라리 카쇼비츠의 '증오' 나 하층 계급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린 에릭 종카의 '천사들이 꿈꾸는 삶' 같은 영화들에 더 애정을 느낀다.

그는 "룸펜의 삶은 솔직하며 우리는 그들의 상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고급 사회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고 단언했다.

반면 파리출신 그룹의 아세이야스 (43) 는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는 현실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솔직히 그들의 경건한 체하는 태도는 쉽게 수용하기 힘들다.

쁘띠 부르즈와들이 현대적인 일상에서 느끼는 소외, 의미의 상실 등도 하층계급들의 고통만큼이나 견디기 힘든 것" 이라며 반박했다.

이들의 또다른 차이점은 미국 영화에 대한 태도다.

파리출신들이 자의식적으로 프랑스식 스타일 즉, 이야기 전개가 느리고 대사가 많으며 실내 드라마의 성격이 강한 영화에 집착하는 반면 카쇼비츠 등은 쿠엔틴 타란티노.데이비드 린치 같은 감독들이 보여준 음침하고 능글맞은 영화들에 경도돼 있다.

사실 이들 뉴 누벨 바그 세대에게 영향을 미친 쪽은 60년대의 1세대 누벨바그가 아니라 바로 그 뒷 세대로 봐야한다.

모리스 피알라.앙드레 테신느.장 외스타슈.필립 가렐.브누아 자코.자크 드와이옹 등이 그들이다.

예컨대 외스타슈의 '어머니와 창녀' (73년) 는 고등 교육을 받고도 사회적으로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남자가 두 여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 3시간짜리 영화로 이후 데플레생의 '폴의 애정편력' 과 필립 가렐의 '사랑의 탄생' 에서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가스파 노에는 "외스타슈는 하층계급 출신이면서도 적당한 분노와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실존주의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다른 프랑스 감독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태도" 라고 말했다.

아무튼 프랑스는 영화가 탄생한 이후 1백년간 걸출한 자국 영화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온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다.

그런 만큼 80년대의 공백을 딛고 프랑스 영화계에 일고 있는 새로운 흐름은 오락성과 스펙터클에 의존하는 할리우드 미학의 전지구적 공세에 대한 견고한 진지가 되고 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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