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보철강 처리 '발등의 쇳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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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다음은 한보(韓寶) .' 기아자동차 매각이 일단락된 데 이어 정부가 '한보 연내매각' 방침을 재확인함으로써 또 하나의 '부실덩어리' 한보철강 처리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한보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문제를 거론하며 한국산 철강 수출에 대해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그러나 부도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지 1년반, 세 차례 국내입찰 실패후 국제입찰로 방향을 바꾼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한보의 새 주인은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보는 공장가동 중지 등으로 부실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1월 부도 당시 3천1백여명이던 종업원도 지금은 1천3백여명만 남았고 그나마 4백여명은 핫코일공장 가동중단으로 집에서 쉬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한보의 밀어내기식 생산 때문에 제품값이 더 떨어진다' 고 불만이다.

정부는 미국 뱅커스트러스트컴퍼니 (BTC) 를 통해 국제입찰을 추진중이지만 선뜻 사겠다는 곳이 없는 것은 물론 그나마 값을 워낙 후려치는 바람에 협상이 극히 불투명한 상태다.

한보 관계자는 "영업수입과 채권은행단이 제공한 9백여억원의 차입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며 "누가 인수하든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 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실장은 "한보 처리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한국의 대외신인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면서 "이미 때를 놓친 만큼 값에 얽매이지 말고 국내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조속히 처분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 누가 관심 보이나 = BTC는 국내외 기업을 상대로 예비입찰서를 접수하고 있으며 이미 일부업체들이 실사를 마친 상태. 1차 예비입찰에 응한 곳은 국내 동국제강.인천제철과 외국업체 등 70여 군데며 이중 중국 바오산(寶山) 철강 등 두어 군데가 적극성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최대 철강회사인 바오산철강도 연간 2백만t 이상의 냉연제품을 수입하는 중국의 현실을 감안해 한보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바오산철강의 셰치화(謝企華) 회장은 얼마 전 한국을 방문, 박태준(朴泰俊) 자민련 총재 등 고위 관계자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멕시코 등에 공장을 갖고 있는 이스팟은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한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철광석 수요처를 찾고 있는 인도의 세일. 진달. 우탐, 브라질의 페데레코, 대만의 오나튜브. 쿠에이, 네덜란드의 페어필드 등이 한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업체들도 관심은 있지만 힘이 부치는 상태. 한때 인수의사를 밝혔던 포항제철은 김만제(金滿堤) 전회장의 퇴진에 이은 민영화조치 등과 맞물려 인수를 포기했다.

동국제강. 인천제철. 한국철강. 강원산업 등 전기로 4사는 최근 공동으로 가교(架橋) 회사를 만들어 부실기업을 인수하자는 원칙에 합의했으나 성사여부는 불투명하다. 적어도 1조원에 이르는 자금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 이런 사정을 감안할 때 현재로서는 한보가 외국업체 또는 국내외업체간 컨소시엄에 낙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앞으로의 일정은 = 채권단에 따르면 오는 15일께 예비입찰업체중 5~6개의 '우선협상 대상자' 를 선정하는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 대상자가 선정되면 BTC가 개별협상을 통해 최종낙찰자를 선정하게 되는데 이 작업만 최소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연내 매각' 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 채권단관계자는 "협상에만 보통 1~3개월이 걸려 본계약 체결은 내년 상반기 정도일 것" 이라고 예상했다.

◇ 낙찰가는 = 지난해 포철은 자체조사를 통해 한보의 자산을 3조4천억원으로 평가한 뒤 냉연공장.코렉스설비 등 B지구공사 마무리 비용 등을 고려해 2조원의 인수가격을 제시한 바 있다.

채권단도 "2조원 이하로는 곤란하다" 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평가는 1조원 이하고, 입찰이 진행되면서 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세계 철강업계의 과잉공급, 한보의 재무구조 등을 감안할 때 한보의 가격은 1조원을 넘지 않을 것" 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한보의 부채는 8조3백51억원 (원금 6조1천7백76억원+누적이자). 때문에 채권단은 낙찰가에 따라 6조원 이상의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인수업체들이 한보를 모두 인수하겠느냐는 것도 관심이다. 채권단은 한보의 A, B지구를 일괄인수하는 기업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아직 완공되지 않은 B지구까지 한꺼번에 사겠다는 곳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지구는 이미 완공돼 철근.핫코일을 생산하고 있지만 B지구는 핫코일.냉연공장만 90% 정도 지어졌을 뿐 연간 2백30만t의 선철 (쇳덩어리)을 생산하는 코렉스.DRI설비는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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