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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강공 드라이브' 지속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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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6일 광화문 외교통상부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한 제2차 실무대책협의회의에서 나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파문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4월 외교부 홈페이지 한국 소개란에서 고구려 부분을 삭제한 데 이어 지난 5일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기술을 아예 삭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 정부는 6일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을 급히 중국에 보내 "삭제된 고구려사를 포함해 외교부 홈페이지를 원상복구하라"고 강력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란 기존의 설명만 되풀이했다.

정치권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정부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국내용과 국외용이 따로 있느냐"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거세게 비난했다. 국내에선 시시콜콜 과거사를 따지면서 외국의 한국사 왜곡에는 제대로 대응조차 못한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 내에 공동 대책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일부 여야의원들은 1909년 체결된 간도 협약의 원천무효 확인 결의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고대사 분쟁은 근대사 논란으로까지 이어져 중국과의 심각한 외교 분쟁으로 번질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정부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이 기존의 신중한 입장에서 단호한 대처로 방향이 선회하고 있다. 박준우 외교부 아태국장이 6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 추이톈카이(崔天凱)외교부 아주국장, 류훙차이(劉洪才) 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 등 중국 정부와 공산당 고위 간부를 잇따라 만나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원상복구하라"고 강력 요구한 것도 이 같은 방침의 일환이었다.

비슷한 시각 서울에서도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 주재로 제2차 관계부처 실무대책회의를 열고 향후 대응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 차관보는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다각도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며 "중국의 잇따른 역사왜곡 시도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실제론 대응 수위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강경 대응론'과 '현실 직시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양보를 받아내기 힘든 현실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되레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현실론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찮은 상황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6일 박 국장의 거듭된 원상회복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입장만 반복하자 "이럴수록 더욱 냉철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강성 기조가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처럼 정부 내에 강온 양론이 혼재돼 있는 가운데 6일 외교가 주변에서는 "정부가 이미 수면 아래에서 중국 측과 적당히 타협해 놓고 여론을 의식해 말로만 유감 운운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정부가 '남북 공동대응'카드를 불쑥 꺼낸 것도 이런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서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한 내 고구려사 유물의 보수비용 지원을 논의하면서 자연스레 공동보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5월 제14차 남북 장관급 회담 때 이런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제의했다가 북한 측으로부터 "우리와 중국의 특수관계를 잘 알지 않느냐"며 냉소적인 답변만 들은 데다가 최근의 경색 국면을 감안할 때 성사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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