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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속 작은 펜, 신사의 묵직한 기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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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라폰 파버-카스텔 ‘포켓’ 볼펜. 스프링 방식의 클립이라 두꺼운 가죽 지갑에 꽂고 다니기에도 편리하다. 18만원.
2 라미 ‘피코’ 볼펜. 주사기를 누르듯 뒤를 누르면 길이가 50% 이상 늘어난다. 블랙과 실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7만원.
3 카렌다쉬 ‘에크리도 마야 XS’ 볼펜. 클래식한 느낌의 기하학 문양이 새겨진 디자인이 세련됐다. 볼펜 18만원, 샤프(18만원)와 만년필(35만원) 세트가 있다.
4 포르쉐 디자인 ‘쉐이크’ 볼펜. 짙은 회색에 작은 격자무늬가 프린트된 카본 소재의 펜도 있다. 15만원.
5 몽블랑 ‘보엠 듀에 리뉴’ 만년필. 클립에는 시트린 젬스톤이 세팅됐고, 펜촉은 18K 골드로 로듐 도금됐다. 113만원.
6 몽블랑 ‘보엠 루즈’ 볼펜. 검정 몸통에 붉은 루비가 세팅된 강렬한 대비가 매력적인 제품이다. 47만원.
7 펠리칸 ‘M 300’ 만년필. 대리석 느낌의 몸통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반면, 무게는 가벼워서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펜촉 14K 골드. 45만원.
8 펠리칸 ‘K 300’ 볼펜. 검정과 금색의 조합은 언제 어느 때라도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29만원.
9 몽블랑 ‘보엠 레더 컬렉션’ 만년필. 엠보싱된 송아지 가죽으로 감싸고 플래티넘 도금 실로 스티치를 넣은 100% 수공품. 아이스 블루 토파즈가 세팅됐고, 펜촉은 18K 골드로 로듐 도금됐다. 243만원.
10 크로스 ‘컴팩트’ 볼펜. 립스틱으로 착각할 만큼 아담한 크기와 세련된 컬러가 돋보이는 제품이다. 볼펜 11만5000원. 네 가지 색상의 만년필은 17만5000원이다. /
11 파카 ‘듀오폴드’ 만년필. 인터내셔널 블랙, 체크 컬렉션, 펄&블랙 등의 종류가 있다. 70만~88만원.
12 라미 ‘스크리블’ 볼펜. 몸통은 플라스틱이며 은색 부분은 팔라듐 코팅으로 마무리됐다. 가운데가 볼록한 디자인이라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이 좋다. 샤프도 있다. 7만원.
13 펠리칸 ‘K 150’ 볼펜. 살짝 끝이 들린 클립 부분이 날렵한 이미지를 준다. 8만원.
14 알프레도 던힐 ‘불독’ 만년필. 뚜껑에 불독 머리가, 클립에는 발 모양이 조각된 디자인이 특별하다. 전 세계에 250개만 한정판매되는 제품이다. 405만원.
15 몽블랑 ‘보엠 피루에 릴라스’ 만년필. 보엠 컬렉션 중 가장 화려한 제품이다. 로즈골드 도금 뚜껑에는 몸통과 동일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클립에는 자수정이 세팅돼 있고, 펜촉은 18K 로즈골드로 플래티넘 도금돼 있다. 193만원.


15 몽블랑 ‘보엠 피루에 릴라스’ 만년필. 보엠 컬렉션 중 가장 화려한 제품이다. 로즈골드 도금 뚜껑에는 몸통과 동일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클립에는 자수정이 세팅돼 있고, 펜촉은 18K 로즈골드로 플래티넘 도금돼 있다. 193만원.



찰스 왕세자는 파버-카스텔 ‘포켓’, 오바마는 크로스로 사인
『메모의 기술』의 저자인 사카토 겐지는 “기록하고 잊어라. 잊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하면서 항상 머리를 창의적으로 쓰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 비결은 바로 메모 습관에 있다”고 조언했다. 광고 디렉터이자 기획자였던 사카토는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의 ‘메모의 기술’이라는 게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는 생각을 줄이고 대신 펜을 빨리 움직이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항상 작은 수첩을 휴대하고 다니며 떠오르는 것은 어디에든 즉시 기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전부다.

요즘은 휴대전화에도 각종 메모 기능이 있지만, 역시 즉각적이고 민첩한 메모 기능을 위해서는 수첩과 펜이 좋다. 물론 휴대가 간편해야 한다. 특히 핸드백을 갖고 다니지 않는 남성들에게는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지갑처럼 일상복에 휴대할 수 있는 종류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크기가 좋을까. 첫째, 양복 주머니보다 커서는 곤란하다. 둘째, 요즘같이 날이 더워 셔츠만 입고 있을 때 또는 실내에서 양복 재킷을 벗고 있을 때도 고려해야 한다. 메모할 것이 있을 때마다 일어나서 옷걸이에 걸어둔 양복 재킷을 더듬거리는 일은 메모 행위 자체가 귀찮아질 만큼 성가시다. 이 때문에 양복 주머니보다 작은 셔츠 주머니 크기에 맞추는 게 좋다. 셋째, 지갑에 꽂고 다니기에 적당한 크기도 메모 습관을 향상시킬 만한 조건이다.

필기구 전문 브랜드들은 이런 필요에 알맞은 ‘미니 사이즈’ 볼펜과 만년필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명품 필기구 브랜드 ‘몽블랑’에는 11~13㎝ 길이의 ‘보엠 시리즈’(5, 6, 9, 15)가 대표적이다. 클립 부분에 루비, 사파이어, 자수정, 시트린 등이 박혀 있어 고급스럽다.

반 고흐, 괴테 등 많은 예술가와 석학들의 사랑을 받아 온 ‘그라폰 파버-카스텔’은 248년의 역사를 가진 브랜드로 ‘독일 필기구의 귀족’이라 불린다(‘그라폰’은 독일어로 백작을 뜻한다). 이 브랜드의 섬세함을 대표하는 ‘포켓’ 볼펜(사진 1)은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즐겨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총리 관저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총리 이름을 새겨 선물하는 것으로 소문난 브랜드 ‘라미’의 ‘피코’ 볼펜은(사진 2) 캡슐 모양의 산뜻한 디자인으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스위스에서 화방용품으로 유명한 필기구 브랜드 ‘카렌 다쉬’의 ‘에크리도’(사진 3) 시리즈는 메탈을 통으로 깎는(몸통과 볼펜·만년필 촉 부분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신기술을 사용했다.

포르셰 자동차에 사용된 소재를 이용해 필기구를 만드는 ‘포르셰 디자인’은 자동차 명품 디자인으로 손꼽히는 브랜드답게 세련된 모양이 특징이다. 특히 11㎝ 크기의 ‘셰이크 펜’(사진 4)은 몸통을 돌리거나 누르지 않고, 가볍게 흔드는 것만으로 볼펜심이 나오고 들어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용하는 재미가 크다.

독일 명품 ‘펠리칸’의 미니 만년필(사진 7)은 다른 브랜드의 초소형 만년필들과는 달리 ‘피스톤 필러 방식’을 채택한 유일한 제품이다. ‘피스톤 필러 방식’이란 다른 브랜드의 미니 만년필이 교체용 카트리지나 컨버터를 쓰는 것과 달리 몸통 자체에 잉크를 저장하는 방식을 말한다. 작지만 만년필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그대로 살려 품위를 유지한다는 컨셉트다.

1846년 영국계 이탈리아인 발명가 알론조 타운센드 크로스가 설립한 ‘크로스’는 본래 금으로 된 필기구 케이스와 보석 제품을 생산했던 브랜드인 만큼 깔끔한 디자인과 세공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필기구 브랜드로 오바마 대통령과 백악관 직원들은 모두 크로스 펜을 사용하고 있다. ‘컴팩트’(사진 10)는 선명하고 다양한 색상 덕분에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파카’의 ‘듀오폴드 미니 컬렉션’(사진 11)은 1920년대 탄생한 최고급 컬렉션 듀오폴드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작고 아담하게 축소한 제품이다.

‘알프레도 던힐’의 ‘불독’만년필은(사진 14) 초소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크기지만 셔츠나 바지 주머니에 휴대하기에는 불편함이 없다. 특히 세계적으로 250개만 한정생산 판매돼 희소가치가 있다.


“남자의 펜은 신뢰감·감각 보여주는 무기”
제임스 토마스 시아노 몽블랑 아태지역 총괄 CEO

예술가를 후원하는 손길은 많지만 그 후원자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은 드물다.”

몽블랑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 CEO 제임스 토마스 시아노(사진)의 말이다. 지난 6월 ‘2009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시아노는 당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펜과 문화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펜은 세대 간 문화를 전달하기 위한 명문화 작업에 꼭 필요한 도구다. 따라서 어떤 펜을 쓰는가는 한 사람의 문화적 소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150년의 역사를 가진 몽블랑이 설립 초기부터 ‘가치 있는 펜을 만든다’는 철학을 기초로 다방면에 걸친 예술 후원 활동을 해 왔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음은 최근 ‘남자와 펜’이라는 주제로 시아노와 나눈 서면 인터뷰 내용이다.

-남자에게 ‘펜’이 중요한 이유는.

“펜의 주요한 기능은 글쓰기(메시지를 남기는 것)와 서명이다. ‘글쓰기’는 메시지를 통해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다. ‘서명’은 펜을 사용하는 당사자의 힘과 재량·능력 등을 단시간 내에 보여 주는 상징이다. 이 때문에 직접 글을(서명을) 남기는 순간에 꺼내든 펜이 어떤 브랜드의 것인지, 또는 어떤 디자인을 갖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감각은 물론 신뢰감도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펜을 고를 때 직업 또는 즐겨 입는 의상 등에 따른 스타일을 고려한다면.

“최근에는 브랜드마다 펜의 디자인이나 무늬가 다양해져 패션 아이템으로 충분히 주목받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펜을 선택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펜의 기본적인 가치, 즉 묵직한 신뢰감과 만족스러운 필기감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스타일을 맞춰야 한다면 만년필이나 볼펜처럼 작은 사이즈의 소품들은 포인트로 연출하는 것이 좋다. 몽블랑의 경우 실용적이고 가벼운 제품을 선호하는 분께는 마이스터스튁 컬렉션을, 묵직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원하는 분에게는 골드나 실버 소재에 주얼리 등이 가미된 솔리테어 컬렉션을 권하고 있다.”

-고가의 펜을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면 관리 방법은.

“만년필은 가격을 떠나 기본적으로 정기적인 세척이 꼭 필요하다. 적어도 1~2개월에 한 번씩은 해 주는 것이 좋다. 잉크를 다 따라내고 미온수를 준비해 마치 잉크를 넣듯이 컨버터에 넣었다 빼기를 반복하면 깨끗하게 세척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는 만년필은 잉크를 빼고 세척한 후 보관한다. 은 소재의 제품은 세척액이나 화학성분을 첨가해 닦기보다 깨끗한 면 소재의 천으로 먼지를 제거하는 것이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남자의 품위와 스타일’이라는 관점에서 몽블랑의 디자인 컨셉트와 철학을 말한다면.

“모든 몽블랑의 필기구 끝에는 ‘화이트 스타’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만년필 펜촉에는 4810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화이트 스타는 몽블랑 산꼭대기의 만년설을 상징하는 브랜드 로고이며, 4810이라는 숫자는 몽블랑 산의 높이를 나타낸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정상·최고를 상징한다. 100년 넘게 고수해 온 전통적인 제조 방식과 장인정신, 클래식한 디자인 등 브랜드의 자부심이 녹아 있는 이 로고와 숫자는 ‘최고의 남자’가 가져야 할 가치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씩 오르듯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에 충분히 시간을 투자하고, 때로는 정성스러운 글씨로 마음을 건넬 줄 아는 남자가 진짜 품위있고 멋진 남자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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