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사망 반 줄인 블랙박스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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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충남의 D여객은 연초부터 53대의 시내버스에 달린 운행기록계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교통안전공단에 보내 분석한 자료를 받아보고 있다. 운행데이터에 따라 과속이나 급가속 또는 급제동이 많은 기사에게는 벌점을 주고 안전운행 교육을 한다. 그 결과 하루 40분 이상이던 장기 공회전이 완전히 사라졌고 정속 운행이 자리 잡으면서 경유 1L당 평균 3.9~4.2㎞이던 연비가 4.3㎞ 이상으로 높아졌다. 버스 한 대당 사고율도 47%에서 26%대로 낮아졌다. D여객 관계자는 “연말이면 지난해보다 약 18억원의 연료비와 2억4000여만원의 보험료를 절감하는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루 800여 편의 고속버스를 운행 중인 동양고속은 2006년부터 운행기록계를 경영에 활용하고 있다. 이 회사 이선교 안전팀장은 “운행기록계를 장착한 이후 사망이나 중상 같은 사고는 전혀 없고 접촉사고 같은 경미한 사고도 연간 약 400건에서 150건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줄자 보험료율이 낮아져 2005년에 비해 올해 7억원 정도의 보험료를 덜 낸다. 기사들이 공회전을 줄이고 정속 운행을 하다 보니 연간 기름값도 15억원 정도가 줄었다.

운행기록계를 경영에 활용하는 운수업체가 늘면서 안전사고가 크게 줄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이 운행기록계를 경영에 활용 중인 운수업체 225개를 조사한 결과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 상반기 39명에서 올해 19명으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안전공단 안전기획처 조시영 교수는 “운행기록계를 지난해부터 표준화한 이후 운수업체가 운행기록을 실제 경영정보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안전사고가 감소하고 연료비나 보험료가 줄었다”고 말했다.

운행기록계(디지털 타코그래프) 활용 원리는 이렇다. 차에 장착된 운행기록계에 운전사가 이동용저장장치(USB)를 꽂고 운전을 시작한다. 운행이 끝나면 USB 데이터를 회사 PC에 입력해 교통안전공단으로 전송한다. 여기에는 0.01초 단위로 속도·엔진 회전 수·급가속·브레이크 횟수·운행 위치 등이 담긴다.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비슷하다. 교통안전공단은 이 자료를 활용해 난폭 운전 등 운전사의 습관, 과속이나 난폭 운전하는 구간 등을 분석해 운수회사로 보내고, 회사는 사고 예방이나 잘못된 운전 행태 교정 교육을 시행한다.

운행기록계는 2001년 영업용 차량 장착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장착만 했지 데이터를 실제 경영에 활용하는 데는 드물었다. 20여 종의 운행기록계가 입력하는 데이터가 제각각이고 분석 프로그램이 비싸 운수업체들이 활용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8월 교통안전공단이 제품을 표준화하고 분석을 대신해주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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