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결혼 700만원…출장비 또 100만원…납품업체 등친 원청업체 지독한 과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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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울산에서 자동차 부품 포장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체의 곽모(69) 사장은 2002년 6월 이 회사가 목을 매고 있는 원청업체 A사의 구매 담당 김모(54)씨의 방문을 받았다. “내가 잘 해주지 않으면 당신 회사 문 닫아. 접대비 좀 내놓지.” 김 과장의 협박에 별생각 없이 100만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김 과장은 매월 10일 납품대금을 줄 때마다 손을 내밀어 100만~200만원씩 상납 받았고, 매년 말 서울 본사로 출장 갈 때는 출장비·접대비 명목으로 평균 100만원씩 7년간이나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7년 자녀가 클릭 승용차를 구입하자 등록비 명목으로 300만원을 챙긴 것도 모자라 매월 69만원씩 12개월간의 할부금까지 대납시켰다.

지난해 4월에는 “딸이 결혼하는 데 협조해달라”는 전화를 걸었고, 곽 사장이 200만원의 현금이 든 봉투를 전달하자 “이것도 돈이라고 가져왔느냐. 필요 없다”며 내동댕이쳤다. 곽 사장은 부랴부랴 500만원을 더 건네고서야 김 과장의 ‘진노’를 달랠 수 있었다.

김 과장은 나름대로 명목이 있을 때만 손을 내민 것도 아니었다. 2007년 11월부터는 호프집을 운영하는 지인의 명의로 차명계좌를 개설한 뒤 올해 2월 퇴직하기 직전까지 매월 100만원씩 꼬박꼬박 15개월간 상납을 받았다. 김 과장이 구매 부서에 배치된 이래 퇴직할 때까지 7년간 곽 사장에게서 갈취한 것은 51차례에 걸쳐 7700만원에 달했다.

김 과장의 파렴치한 행위는 암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운 아버지로부터 “A사 김 과장에게 인간적으로 수모를 당해 한이 맺혔다. 사과라도 받아야 눈을 감을 수 있겠다”는 하소연을 들은 곽 사장의 아들(45)이 김 과장을 찾았으나 거절당하자 경찰에 고발해 드러났다.

김 과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하청업체에 대한 원청업체 담당자들의 또 다른 비리도 확인됐다. 선박부품 1차 하청업체 C사의 고모(60) 부장은 유흥업소에서 술을 마시다 2차 하청업체 D사의 김모(53) 사장을 불러내 “다른 업체도 나를 접대하는데 알아서 하라”며 술값을 대납시키고, C사가 D사에 준 무상지원금을 자기 계좌로 돌려받는 등 17회에 걸쳐 5500만원 상당을 갈취했다.

울산경찰청은 12일 김 과장과 고 부장에 대해 상습공갈 등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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