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노동조합의 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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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모두 잘 아는 것처럼, 기술은 중요하다. 보다 좋은 상품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지식은 경제 성장과 문화 발전의 핵심적 요소다. 그런 ‘물리적 기술(physical technology)’은 그러나 사회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사회마다 사람들의 경제 활동들을 조직하는 방식이, 즉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기술은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다. 경제사가(經濟史家)들은 실은 그것이 한 사회의 운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사회적 기술은 노동조합이다.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많은 사람이 지적해 왔듯이, 전투적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폐해는 심대하다. 이번 쌍용자동차 사태는 조직된 소수의 노동자들이 사회 전체에 끼치는 폐해가 얼마나 큰가 새삼 일깨워 주었다.

이제 우리는 노동조합의 본질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모두 호감을 품은 노동조합이라는 제도가 사회에 그렇게도 해로운 까닭을 정직하게 살펴야 한다. “노사가 한 걸음씩 물러서서 타협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아무런 효과가 없는 상투적 처방으로 끝내기엔 사태가 너무 위중하다.

노동조합의 본질은 ‘인위적 독점’이다. 기업의 종업원들이 당해 기업에 대한 노동의 공급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도록 사회가 강제한 것이다. 노동조합에 인위적으로 부여된 독점은 물론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나며, 노동조합의 폐해들은 모두 거기서 나온다. ‘약한’ 종업원들을 ‘강한’ 사용자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려는 노동조합의 목적과 독점을 인위적으로 부여한 수단 사이에 조화될 수 없는 상충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곤혹스러운 사정을 푸는 길들 가운데 가장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노동조합에 부여된 인위적 독점 대신 법과 사회안전망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방안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과 사회안전망은 상당히 만족스럽게 기능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도움 없이도 자신들의 권익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많은 노동자가 그 혜택을 입었다. 아울러 여러 사회 제도들이 개선됐다. 반어적으로, 자신의 그런 성공 덕분에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에게도 필요 없는 존재가 됐다. 이제 노동조합은 자신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덕분에 사라진 많은 존재들의 행렬에 들어야 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큰 고마움이 그런 사실을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누리는 독점적 지위는 그대로 남았고 노동조합이 지닌 힘도 여전하다. 그런 인위적 독점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지금 모든 앞선 사회들에서 노동조합의 독점적 지위가 낳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경제적 성취를 막는 가장 큰 요인이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늘 경제개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노동조합은 스스로 가치를 생산하지 못한다.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실은 일자리를 줄인다.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지도 못한다. 노동조합은 힘이 작은 노동자들로부터 힘이 센 노동조합원들로 소득을 이전할 따름이다. 노동조합은 늘 잘 조직된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장치였고, 떠돌이 노동자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정말로 약하고 딱한 노동자들의 이익은 외면했다. 근년에는 노동조합원들의 해고를 실질적으로 막아서, 기업들이 비정규직이라는 편법을 쓰도록 강요했다.

안타깝게도, 한번 발명된 사회적 기술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으로부터 노동 공급의 독점권을 회수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 그것은 시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 지도자가 결단을 내려서 헌법을 개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질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그런 과정이 시작되기도 어렵다.

현실적 선택은 노동조합이 사회에 짐이 덜 되는 존재로 진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방안은 노동조합이 인력송출회사와 비슷한 형태로 진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노동조합의 본질적 기능을 살리면서도 독점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

이 일에서도 시민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결정적 요소다. 지금의 노동조합은 너무 원시적이고 부작용이 많은 사회적 기술이라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질 때, 노동조합은 보다 바람직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