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 사진작가 카르티에-브레송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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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세기의 대표적 사진 미학인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95)이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동부 알프스 산맥의 작은 마을 세레스트에서 타계했다.

1908년 8월 22일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그는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보도사진가로 세계 전역을 누볐다.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나치 점령과 파리 해방, 중국의 공산혁명, 마하트마 간디 암살 등 주요 사건을 카메라에 담았다.'라이프''보그' 등 유명 잡지의 단골 기고자로, 각종 국제 사진전의 출품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1947년 다큐멘터리 사진의 또 다른 거장인 로버트 카파 등과 함께 사진전문 통신사인 '매그넘'의 창립을 주도하며 포토 저널리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52년 그의 유명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이 출간되자 세계는 '결정적 순간'사진의 열풍에 휩싸였다. 결정적 순간 사진이란 절제된 구성과 기하학적 구도로 귀결되는 최상의 순간을 포착해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비 온 뒤 물 고인 웅덩이를 뛰어 넘는 한 남자의 모습을 포착한'생 라자르 역 뒤에서'(1938년.사진(右))다. 공중에 떠 있는 사람과 물에 비친 그의 그림자를 물에 빠지기 1000분의 1초 쯤 전에 잡아낸 것이다. 더욱 절묘한 것은 이 남자의 동작이 뒷배경인 생 라자르 역 담벼락에 붙은 서커스단 포스터의 댄서들의 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55년 사진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75년에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데이비드 시모어)가 취재 도중 살해되면서 사진에서 멀어졌다. 66년에는 매그넘과도 결별했고, 74년 이후에는 그림에만 전념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평생 소형 라이카 카메라만 사용했고, 표준렌즈만 고집했다. 또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빛 아래서만 사진을 찍었다.

원래의 느낌과 달라지는 어떠한 변형이나 조작도 용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6월25일부터 카르티에-브레송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있는 서울 청담동 갤러리 뤼미에르는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당초 6일까지로 돼 있던 전시 일정을 오는 29일까지로 연장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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