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제 살리는 청문회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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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환란 (換亂) 1년 만에 그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경제청문회가 열리게 됐다.

감사원.검찰이 외환위기 과정을 이미 조사했지만 국회의 국정조사권 발동과 이에 따른 청문회는 의미가 다르다.

감사원.검찰 조사는 정책집행의 법적.기술적 문제만 주로 다룬 데다 그 결과를 국민이 공유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국회조사는 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된 구조적 배경과 개선책에 접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경제정책 핵심관계자나 주요 경제사건의 당사자가 한국경제의 실상과 문제점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국민이 직접 접할 수 있으니 개선책에 대한 중지 (衆智) 도 빠르고 실질적으로 모일 수 있다.

무엇보다 청문회는 국민 모두가 6.25이후 최대국난이라는 경제위기를 그토록 허망하게 맞게 된 부끄러운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재발방지와 개선책을 고민하는 하나의 의식 (儀式) 이어야 한다.

청문회가 이런 역사적인 의미를 살리면서 건설적인 열매를 맺으려면 여야는 증인.의제선정과 운영방법 등을 신중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여야는 기본적으로 '경제를 살리는 청문회' 로 나아가야 한다.

청문회도 여야의 경쟁이니 공수 (攻守)가 없을 수는 없지만 청문회를 이용해 상대방을 흠집내고 반사이익을 취하는 데 몰두하겠다는 정쟁 (政爭) 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벌써부터 파쟁 (派爭) 의 기운이 도는 것은 우려스럽다.

여권은 아무래도 현 야당의 과거 경제실정.비리를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데 주력할 태세다.

신경제 5개년계획, 세계무역기구 (WTO)가입 같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정책까지 의제로 검토하는 데에서 그런 냄새가 풍긴다.

야당은 이를 결사적으로 막으며 거꾸로 현 정권의 야당시절 책임과 집권후 위기대처방식 등을 도마 위에 올릴 참이다.

중간에 낀 김영삼 (金泳三) 전대통령과 민주계에는 진실에 순응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겠다는 자세보다는 "왜 우리만이냐" 는 정치적 정서가 짙다.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정쟁의 칼날을 세우면 청문회가 혼란스런 정치행사장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청문회의 우선적인 사명은 진상 파악과 개선책 발견이다.

여야는 책임공방보다는 금융부실.정경유착.과잉투자,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 불안정한 노사관계, 정부의 정책부실 등 한국경제가 건강을 잃고 비만과 거품으로 빠져든 과정을 냉정히 짚어 나가야 한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여야는 모처럼 총재회담을 통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 를 약속했다.

앞으로 예산안.법안심의도 있지만 경제청문회야말로 이 약속의 실천을 시험받는 본격적인 무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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