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중관계의 21세기 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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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지역 국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외교란 본래 자국의 정치.경제.안보상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작업이며, 그 과정에서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게 밀고 당기는 힘 겨루기가 진행된다.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외교적 과제 역시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 '불가분의 관계' 로 특징지워지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국익의 극대화라는 요인을 냉철하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더구나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있어 중국은 너무도 중요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의 이번 중국 방문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92년 8월 한.중수교 이후 우리나라 정상의 중국 방문은 노태우 (盧泰愚).김

영삼 (金泳三) 대통령에 이어 이번 김대중 대통령이 그 세번째다.

92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한.중수교를 자축하는데 역점을 두었을뿐 그 성과가 미미했다.

또한 94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북한 핵문제가 국제적 쟁점으로 부각되고 이에 대한 각국의 입장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실효성 있는 공조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중국의 의도와 현실적 능력에 대한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검증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에 대해 대북한 압력행사를 일방적으로 요구했던 것이 실패의 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물론 국가간의 해묵은 현안들이 한 두차례의 정상외교를 통해 속시원하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더욱이 우리와 중국간에는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없이 정치.안보상의 고질적인 난제들이 산적해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金대통령의 방중 (訪中) 이 다가오는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을 주도하는 바람직한 한.중관계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그에 기초한 정책기조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그에 따른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기본인식은 한반도의 평화.안정 확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우위 유지, 한국과의 교류협력 강화로 집약될 수 있으며 한.중관계의 주요 현안들은 하나 같이 이들과 연계돼 있다.

이러한 대 (對) 한반도 인식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중국의 정책은 첫째, 남북한과의 관계를 균형적으로 유지하는 기초 위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둘째, 미국.일본.러시아에 비해 총체적인 측면의 대 한반도 영향력 우위 유지를 위해 미.일의 대북 (對北) 수교를 상황에 따라 조건부로 지지하며, 셋째, 한국과의 경제협력과 더불어 특정 정치.외교.안보적 사안에 대한 공감대를 확대해 나간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현단계에서 남북한의 공존을 유도하고 이들과의 관계를 최대한 균형적으로 유지하되, 장기적인 측면에서 통일한국의 등장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이러한 인식과 정책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국익을 수호하고 21세기의 바람직한 한.중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해 요구되는 우리의 정책적 고려사항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특정 분야에 편중된 정책을 지양하고 교류.협력을 다각화함으로써 양국관계의 저변을 부단히 확대해 나가야 한다.

둘째, 현실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대중 (對中) 정책 전반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중국의 협력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고려한 대북한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대북정책 변화를 직접 유도하는 데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셋째, 중국의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한다.

중국의 각종 혁신적 정책 및 그 결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의거하지 않은 대중정책은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렵다.

넷째, 남북한간의 대화.협상에 의한 '평화적' '자주적' 통일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공식 입장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인 측면에서 통일에 대비한 한.중협력을 가능한 부분부터 차분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점들은 21세기의 한.중관계가 '경제적 호혜' '정치적 선린' 의 단계를 거쳐 '전략적 동반' 의 차원으로 발전하기 위해 요구되는 사항들이다.

문흥호(한양대 아태지역학 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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