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喪主 김희로씨 “불효자는 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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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일 오전 11시30분 일본 시즈오카 (靜岡) 현 가케가와 (掛川) 시 세레모니홀. "한번만이라도 아들을 얼싸안고 싶다" 던 박득숙 (朴得淑.90) 할머니 장례식장에 아들 대신 전보 한장만 달랑 날아들었다.

"오늘 아침 어머니께 편지를 쓰던중 운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장례식 시간에 맞춰 형무소에서나마 어머니를 보내드리겠다.

정말 어머니와 같이 가고싶은 심정이다. "

- 발신 구마모토 (熊本) 형무소 김희로 (金嬉老.70) .

金씨는 지난 68년 시미즈 (淸水) 시에서 "더러운 돼지새끼 같은 조센진 (朝鮮人)" 이라는 민족차별적 언동에 흥분, 야쿠자 2명을 총으로 살해하고 인질극을 펼쳤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31년째 복역중인 일본내 최장기수. 어머니 朴씨는 인질극 현장에서 흰색 한복을 아들에게 건네주며 "일본인에게 잡혀 더럽게 죽기 보다는 깨끗하게 자결하라" 고 했던 강골의 여인.

그러나 아들의 수감생활이 길어지면서 朴씨는 일본 법무성에 수도 없이 "아들이 일본 법률을 어긴 것은 절반 이상 나의 잘못" 이라며 "차라리 나를 처벌해달라" 고 탄원했다.

그리곤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신의주에서 부산만큼 떨어진 구마모토 형무소로 매달 면회를 거른 일이 없었다.

옥중 金씨의 유일한 위안도 어머니였다.

무려 2백여통의 편지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대신했다.

항상 "건강하세요" 로 시작되는 그의 편지는 "못난 현재의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어머니뿐입니다"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벌써 쓰러졌을 거예요" 등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아 전달했다.

17세때 부산에서 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간 朴할머니는 엿장수.돼지고기 장사로 억척스레 생활을 일궈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현재 金씨 형제들이 운영하는 토건회사는 시즈오카현에서도 굴지의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아들이 교도소에 갇혀있는 한 朴할머니의 한은 풀릴 수 없었다.

"내 손으로 따뜻한 밥 한공기를 먹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 며 눈물로 보낸 31년동안의 기다림에도 속절없이 朴할머니는 한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화장터로 향하자 장례식장에서 12마리의 흰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金씨의 석방운동을 펴고 있는 박삼중 (朴三中) 스님이 영구차를 따라가며 불경을 외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영혼이 가면 어디를 가겠어요. 구마모토 형무소 담장 뒤를 맴돌겠지…" .

가케가와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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